쌉쌀달콤 옥탑방 신혼일기 써가는 2030 청춘부부 김정주·정새나 씨

   
▲ ⓒ복음과상황 이범진

설교자의 꿈을 꾸던 한 신학생은 이 시대 청년 대부분이 그러하듯 학자금과 생활비를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받아 충당하고, 졸업 후엔 ‘채무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서울의 한 중형 교회 파트타임전도사(‘파전’)로 일하는 그가 받는 사례비는 월 70만 원이다. 각자 일을 하는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았던 그는, 사례비를 아끼고 아껴서 (대출이자를 포함하여) 필수 지출만 하면서 그런 대로 “생활은 됐다.” 저축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작년에 결혼했고, 두 달여 후면 아빠가 된다. 얼마 전 희년함께의 ‘청춘희년 프로젝트’(본지 294호 참고) 1차 대상자로 선발되어 대출상환금 2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뉴스앤조이〉에 인기리에 연재중인 “파전행전”(파트전도사의 행복을 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 김정주(31) 씨 이야기다. 그 생활수기를 읽다가 우리 시대 가난한 청춘부부의 살림 상황(월급 7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 더 궁금해졌다. 그의 새 ‘알바’ 면접 날짜를 고려하여 정주 씨와 아내 정새나(25) 씨의 서울 송파구 가락동 옥탑방으로 향했다. 전화로 위치 설명을 들으며 골목골목을 걷다 보니 어느 주택 옥상에서 손 흔들고 있는 부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 집으로 들어가니 볼록한 배를 안고 새나 씨가 먹기 좋게 썰린 수박이 놓인 아담한 방으로 안내했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간단히 자기 소개를 좀 해달라.
김정주(이하 ‘정주’): 서울의 한 중형교회 파트전도사다. 유아부, 유치부, 유초등부서를 총괄하면서 유초등부에서 설교한다.

정새나(이하 ‘새나’): 결혼 전 퍼스널 웨이트 트레이너로 오래 일하면서 교회 간사도 했다. 신학 전공이 아닌데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신학교 다니는 교회 친구에게 많이 물어보곤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선배인 지금의 남편을 연결해줬다. 그래서 많이 묻고, 책 추천도 부탁했었다. 그렇게 만나다가 연애하게 되고 6개월 만에 결혼했다.

― 〈뉴스앤조이〉에 연재중인 “파전행전”으로 정주 씨 생활을 읽었다. 새나 씨 이야기도 자주 나오는데, 남편 글을 읽어 봤나.
새나: 지나온 시간들이 생각나면 울컥 한다. 내용이 너무 적나라해서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이 보고 걱정하실까 봐 많이 신경 쓰였다. 속상해하실까 봐 정말로 어려울 땐 힘들어도 친정에 아무 내색 안했다. 기본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열망하는 믿음이 있어도 마음이 어렵더라. 부모님은 우리가 월세인 것도 모르셨는데 그 글을 보고 아셨다. 마음 아프게 해드려 죄송했다.

― 글을 읽으신 부모님 반응이 어떠셨나.
새나: 속상해하셨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응원해주신다. 특히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금방 “새나야, 정주가 빚쟁이구나. 아끼고 절약해서 대출 빚부터 갚을 생각해라. 잘 살아야 한다”라고 하시더라. 지금은 괜찮다. 엄마 아빠가 많이 깨어 있으신 분들이다. 나한테도 항상 책 읽고 공부하라고 하시고, 애 태어나기 전에 정주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목회를 계속 하려면 더 많은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 지금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하신다. 세상도 알고 시대도 알고 공부도 해야 한다고, 가난해도 공부하라고 하신다. 평범한 집이었는데, 부모님도 우리가 결혼하는 과정을 함께 겪으시면서 변하신 것 같다. 상견례 이후 결혼 파토날 지경이었을 때, 두 분이 나 몰래 “시집 못보내겠다”며 싸우시는 걸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한텐 정주와 결혼하게 되면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쉬운 길이 아닐 거라고 하셨고, 함께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믿음이 회복됐다. 시간이 꽤 지난 뒤 다시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남편이 아빠한테 식사를 청하는 연락을 드렸을 때, 아빠가 보낸 답신(카톡)에 정말 감동했다.

   
▲ 새나 씨 아버지의 답신

남편이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8시간 정도를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 흐름이 끊길까봐 최근 면접 본 알바는 안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에 내가 알바해 번 돈도 있고, 사실 알바하면 공부 흐름이 끊긴다.

정주: 어머니와 장인 장모님 모두 같은 교회에 다닌다. 늘 보셔서 그런지 믿어주신다. 가난한 것뿐이니 신앙으로 지지하고 격려해주신다. 두 분 신앙이 크시다. 내가 부자가 되고 소위 성공하는 걸 바라시는 게 아니라 잘 성장하기를 바라신다. 우리 부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좋아해주시고. 딸 보내주시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좁은 길을 가리라 감수하고 보내주신 거다. 부모님이 핍박했으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 일주일을 5천 원, 심지어 천 원으로 버텨야 하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견뎌왔나.
정주: 그땐 정말 낼 거 내고 나면 항상 적자였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땐 없으면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없어졌는데도 살 수는 있더라. 힘들었지만 사실 돈이 더 없을수록, 수중에 천 원쯤 남았을 땐 오히려 초연해졌다. 일단은 살고 있는 집이 있고, 쌀은 시골에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교회에서도 주셔서 쌀 떨어져 본 적은 없고, 교회 가면 사람도 만날 수 있으니까. 돈은 없었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새나: 그땐 임신 전이었는데, 임신 후에는 좀 힘들었다. 초기에 먹고 싶은 음식이 막 생각나는데 도저히 먹을 형편이 못 되었다. 생활을 해야 하니까. 남편은 미안해서 괴롭고, 나도 그 모습을 보기 맘 아프고. 그런데 그보다도 아기라는 생명을 품은 시간이 감사와 기쁨의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힘들었다. 그래도 잘 지나온 것 같다. 하루는 먹어본 적도 없는 대게가 계속해서 생각났다. 비싸서 못 먹으니까 대신 꽃게라면을 먹었다.

― 오늘 이렇게 인터뷰하게 된 것도 그렇고, 사람들이 사정을 알고 걱정해주는 게 오히려 불편하진 않나.
정주: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사는 이야기와 빚이 있다는 사실이 만인에게 공개되었는데 그게 오히려 위로가 된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못나고 찌질한 내 삶이 다른 이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과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아, 그래서 하나님이 내 못나고 찌질한 형편을 그대로 두셨나’ 싶다.(웃음) 소위 성공 노선을 달려가고 있다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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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수입은 70만 원이 전부인가?
정주: 알바를 안 할 때 70만 원이고, 알바를 할 때는 무슨 알바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금요 철야와 토요일과 주일을 빼면 주중엔 특별히 교회 일이 있지 않는 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그래서 파리바게트, 냉면집, 홈플러스, 목욕탕, 경륜장, 공장, 대학교(유리창 청소), 바퀴벌레 약 놓기, 소독 방역, 택배 알바 같은 것들을 자잘하게 두루 해봤다. 목욕탕 수입이 다른 것보다 좋았는데, 교회 사례비와 합쳐서 많을 땐 120만 원 정도 되었다. 결혼 전엔 70만 원 받아도 어머니께 용돈 조금 드리고 혼자 쓰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결혼 후 사례비 70만 원에서 월세 40만 원이 빠지니까 타격이 컸다. 70만 원 월급 받으면서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참 말도 안됐던 일 같다.(웃음)

― 남편 수입이 얼만 줄은 알고 결혼한 건가?
새나: 물론이다. 돈은 내가 벌고 있었고, 계속 벌 줄 알았다. 결혼 전부터 강남의 피트니스 회사에서 4년간 쉬지 않고 개인 웨이트 트레이너로 일해서 수입이 꽤 됐다. 외모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 직업이고, 매월 매출 압박도 있어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국내·국제 홈 트레이너, 생활 트레이너 보디빌딩 자격증까지 다 있다. 새벽예배 드리고 6시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지금이랑 다르게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 선교 훈련도 받고 교회 간사도 병행했다. 나름 훈련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차원이 다른 재정훈련을 받는 것 같다. 결혼하면서부터는 일은 또 왜 그렇게 힘든지 다른 피트니스 회사로 옮겨서 일했는데 스트레스가 훨씬 많은 환경이었다. 그래도 생활이 어려우니까 임신 전까지는 계속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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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지금과 달랐다는 말은, 결혼 후엔 식었다는 의미인가?
새나: 열정의 종류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스물한 살에 회심이라는 걸 하면서 이전 삶과는 완전히 달라졌었다. 일도 열심이었지만, 회사 그만두고 선교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런 뜨거움이 신앙 초기에 있었다. 나처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깔봤다. 회사에 한 달 동안 티베트 선교를 간다고 한 적이 있는데, 처음엔 허락해줬다가 회의 후 안 된다고 해서 회사 그만두고 선교 갈 생각이었다. 결국 선교 일정 자체가 일주일로 조정되어 회사에서도 보내줬는데, 그런 에피소드들을 통해 나는 더 교만해지고 자기의가 커졌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진짜 어려운 생활들을 보내면서 내가 깨어지는 중이다. 상황이 어렵고, 그 가운데 정말로 마음이 아프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자라는 것 같다. 전보다 오히려 더 인간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다. 이제 와 과거를 돌아보면 어느 누구의 삶도 쉽게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고 훈계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 뜻 운운하면서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말없이 손잡아주고 등 토닥여주고 뒤에서 기도해주는 게 깊은 위로가 된다는 걸 알았다.

   
▲ 연애 시절

― 정주 씨는 아내의 이런 생각을 평소 알고 있었나.
정주: 알고 있다. 평일에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서로 대화를 많이 한다.

새나: 나도 뭐든 다 말을 한다. 연재중인 글에서 남편이 나를 많이 세워 주지만 사실 힘들어 할 때 많은데, 그때마다 다 털어놓으면 남편이 나를 다독여준다. 특히 임신 후에는 우울하고 몸도 힘들다. 그러니까 남편이, 새나도 인간이고 인간이 거기서 거기인데 왜 힘들지 않겠냐고, 힘들 땐 충분히 힘들어 하고 아플 땐 충분히 아파하라고 위로해주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30대가 부럽고, 빨리 되고 싶더라. 난 계속 힘들고 앞으로 갈 길도 힘들어 보이는데 남편은 늘 요동치지 않는다. 난 남편 앞에서 울기도 많이 하는데, 남편은 별로 흔들리는 모습이 안 보인다.

정주: 어릴 때부터 많은 일을 겪고, 그걸 하나님 앞에 혼자 가져가서 해결하는 게 몸에 익어서 그런지 덤덤한 것 같다. 새벽에 방에서 혼자 기도할 때 많이 울었다.

― 질문이 좀 그렇지만 애가 태어나면 더 어려워질 텐데, 아기를 너무 빨리 가진 건 아닌가?
정주: 원래 둘이 다산(多産)을 꿈꿨다. 계산해보니 올해 초부터 달려야겠더라.(웃음) 요즘은 계획하고 실행한다고 그대로 되는 일도 아닌데 하나님이 아기를 주셔서 감사했다. 질문처럼, 우리 상황은 사실 결혼도 안 하는 게 요즘 같아서는 더 맞지 않나. 그런데 하고 싶었고, 아내나 나나 둘 다 어차피 시간 간다고 더 나아지지 않을 상황인데 오히려 나아지길 기다리면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저질러 놓으면 다 길이 생기더라. 아기 용품도 교회 안에서 나눌 수 있어서 문제 없겠고, 어쨌든 나라에서 탈 수 있는 돈도 있고. 일하는 교회가 여러모로 건강한 교회고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아서 서로 관계도 좋고. 출산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너무 심각하게 하진 않았다. 생각만 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앞으로 가다 보면 길이 어떻게 열릴지 모르는 거니까. 

새나: 희망은 네 명인데, 아직 안 낳아 봐서 일단 낳고 키워보고 몸 상태도 봐야 한다. 생각한 거랑 다르게 3주 때부터 14주까지 한 3~4개월 입덧이 심했다. 육아도 경험해봐야 알 것 같다.

― 빚 문제도 있는데,(웃음) 남편 빚이 얼만지도 결혼 전에 알고 있었나.
새나: 빚은 몰랐다. 속았다.(웃음) 어느 날 한국장학재단에서 우편물이 와서 열어봤더니 빚이 1천만 원이 넘더라. 친정 아버지가 사업하시다가 빚을 져 엄마가 그 빚 갚는 데 일생을 보내셨다. 너무 놀라고 처음엔 정말 ‘멘붕’이었다. 그런데 남편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가슴이 아프더라. 이게 우리 남편, 또는 한 청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이지 않나. 많은 청년들이 빚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참 아프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아서 완벽히 공감할 순 없지만, 남편과 함께 빚을 감당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남편 아니면 실감 못했을 학자금 대출 문제인데, 매년 늘고 있다. 우리 빚은 지금 1천만 원 정도 남았다. 세 군데서 원금과 이자가 빠져나간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남자들이 사고치고, 갑자기 난리 나고, 남편과 소통은 안 되고 그러면 빚이랑 원망만 쌓이고 힘들 건데, 남편과 대화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가니까 괜찮다. 얼마 전에 남편이 물어보기도 했는데, 결혼 전에 빚 있는 거 알았어도 (액수가 더 컸어도) 다른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다.

― 싱글로 살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적 없나.
새나: 결혼하니까 좋은 게 더 많다. 힘들고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행복이 있다. 근데 일찍 결혼하면서 몰랐던 것들이 많다. 살아보니까 결혼은 적령기라고 불리는 나이에 하는 게 더 좋지 않나 한다. 한 스물여덟 살 이후?(웃음)

― 정주 씨는 청춘희년 프로젝트를 통해 “돈 문제에 대해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대출을 받을 때는 클릭 몇 번으로 쉽게 받았다. 어떤 식으로 상환해야 하고, 빚이 어떻게 쌓이는지 모르고 받았다. 그런데 계속 문자가 와서 빚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1,500만 원이 내 빚이었다. 그 액수를 처음 봤을 때 드는 생각은 ‘내 20대에 이 빚은 뭐지?’였다.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마약을 한 것도, 나라를 판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빚이 있나.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만 그런 것 같고 죄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힌 것 같았다. 매번 이자 연체 문자가 왔지만 확인도 안 하고, 독촉 전화 오는 건 안 받고 회피했다. 모르는 전화도 잘 안 받는 탓에 청춘희년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안내 전화도 계속 안 받았다. 그러다 막판에 받았는데, 그 전화도 안 받았으면 취소하려고 했다더라. 이후 지원금뿐 아니라 재정 교육도 받고, 또한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단체들을 알게 되니까 충분히 갚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젠 더 이상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남은 빚을 계속 확인한다.

▲ 공장 벽 닦기 알바 당시(사진: 김정주 제공)

― 그 200만 원이 삶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준 건가.
200만 원은 나에겐 굉장히 컸다. 당장 마련하려면 많은 걸 포기하고 여러 시간 일을 해야 하는 돈이다. 일부지만 빚을 정리했고, 내 타이밍에서는 돈 문제를 직면할 용기를 준 사건이었다. 함께 교육받은 청년들 사정도 비슷했다. 모여 보니까 같은 처지고, 이게 정말 이상한 일도 아니고 멀쩡한 청년들이 겪는 속사정인 게 실감나더라. 각자의 사정을 나누는데 이미 빚은 기본으로 있는 사람들이라 내가 혼자 크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의 경우 정부가 깡패 보내서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불법적 경로에 비해서는 이자가 높지 않으니 견딜 만한데, 더 힘든 사정에 있는 분들은 빚으로 인한 생활의 무게, 체감 온도가 훨씬 클 거다. 게다가 절망의 악순환일 거고….

― 생활의 무게를 버텨내면서 정주 씨도 새나 씨 못잖게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투잡’을 뛰고 생활 전선을 경험하면서 설교가 달라졌다. 예전엔 말씀을 해석하고 그걸 내 입장에서 적용한 것으로 신도들을 본 것 같다. 왜 해야 할 ‘신앙생활’을 안 하는지, 말씀 묵상과 기도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님 의지하면 되는데 왜 안 하지 하는 식으로. 죄인 보는 듯한 공격적인 태도도 있었고, 무기력한 성도들을 보면 짠하기보다는 왜 저렇게 완악한가 하면서 열 받았던 거 같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다양한 일터를 경험하면서 나 역시 별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발견했다. 아침 기상처럼 소소한 일상부터 그랬다.
한 번은 교회 여름 일정 때문에 그 달엔 사우나 알바를 ‘한 달에 네 번’으로 제출한 적이 있었다. 다른 직원들 앞에서 팀장한테 쌍욕을 들었다. 그만둘 각오로 써낸 거고,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웃음) 그런데도 주임을 맡은 형이 나를 보호해줬다. 새 사람 써서 일 배우게 하는 것보다 낫고, 결혼하면 새 일자리 얻기도 힘들 텐데 그냥 참고 쓰자고. 사실 내가 일 못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피해 입는 거 아닌가.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직장 다니는 성도가 회사 일과 교회 활동이 겹쳐 난처해할 때, ‘휴가 내면 되지 않나? 안 되면 그만 둬도 하나님이 더 좋은 직장 주시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건 정말 미친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더라도, 일하면서 너무 많은 변수가 생기니까 그 은혜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일 아닌가. 게다가 나는 어느 정도 기간을 정해놓고 알바를 뛰지만, 생계로 인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분들은? 지금 설교 준비를 할 때면 해석한 말씀들을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시장에서 일하는 분도 있고, 직장인도 있고, 빚져서 무거운 분들에게 단순히 ‘믿어라’ ‘행해라’가 아니라, 어떤 언어로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 앞서 공부 이야기가 나왔지만, 작은 집에 어려운 형편인데도 책이 정말 많다. 두꺼운 신간도 꽤 보인다.
계속 목회를 하고 싶고, 보장된 건 없지만 신대원도 갈 생각이다. 신앙생활을 배워온 교회에서 좋은 어른들을 보고 자랐다. 멋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설교자가 되고 싶었다.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공부도 지금 많이 해야 한다. 무엇보다 책을 좋아한다. 아내가 돈을 아끼면서도 책 살 돈은 챙겨준다. 예전처럼 막 사들이진 못해도 시기마다 책이 없으면 공부를 못하니까.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여 꿈에 그리던 성악가가 된 폴 포츠는 오디션 우승 상금으로 밀린 레슨비를 갚겠다고 하지 않았나. 생업하고 빚져가면서도 레슨은 받은 게 참 인상적이었다. 나도 굶더라도 안 읽을 수는 없다. 굶더라도 책을 사 읽는다는 건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은 거다. 

― 유명한 설교자가 되기를 꿈꾸는 건가?
그건 전혀 아니다. 유명 설교자가 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설교를 할 수 없다. 걸쭉한 시장 언어도 제한될 거고, 점점 더 어려운, 혹은 유식한 설교를 하려고 하지 않겠나. 그런 설교를 듣는 평신도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내일 날품을 팔아야 먹고 사는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물론 정확하고 풍성한 설교를 해야 할 텐데, 요즘 고민이 많다. 공부를 많이, 열심히 해야 하지만 딜레마다. 점점 더 유식해질수록 자랑하려는 설교를 하게 되면 본질을 잃을 테고, 그렇다고 무식하게 되면 똑바로 전할 수 없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다.

― 힘들 때 도움이 된 책이 있나.
아내 만나기 직전 겨울, 마음이 정말 허하고 힘들 때였는데 《상실의 시대》를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이 내 상실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해주는 것 같은 기분. 픽션이지만 그려내는 이야기가, 작가의 문체가 내 상실을 잘 표현해내더라. 깊이 위로가 됐다. 상실이 이렇게 표현될 수 있구나 싶었다. 너무 소중해서 두 달간 독서실에서 반 챕터 읽고 나서 산책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읽으면서 독자에게 바로 위로를 주는, 살아 내는 이야기. “파전행전”을 연재하면서도 내 어려움들을 진솔하게, 그럼에도 유쾌하게 삶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면서 쓰고 있다. 어른들께도 우리들의 고민이 잘 전달되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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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이 땅의 청년들을 두고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을 반영한 ‘5포 세대’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주: 전체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겠지만, 오히려 그 언어가 청년들을 가두는 건 아닌가 싶다. 달리 살고 싶어도, ‘아 나는 5포 세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무기력하게 하는. 그 규정에 우리가 너무 사로잡히진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하나님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포기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니까. 

새나: 사실 나는 체육대학을 가려다가 재수하면서 대학을 가지 않기로 정했고, 오히려 빨리 일을 시작해서 전문성이 생긴 경우라서 학자금 빚을 질 일도 없었다. 상황이 그랬다.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신앙이 자라면서 그런 것들이 깨지고 중요하지 않아졌고. 그냥 우리 청년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런데 혹시라도 교회에서 청년들에게 ‘하나님이 다 책임지신다’ 라는 식의 말을 쉽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주: 정말이지 교회의 메시지가 오히려 우리들 현실 문제를 정확하게 응시하도록 하고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교회가 구제 선교 헌금을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 특히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진지하게 같이 나누려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각각 나름대로 청년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나선다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탁상공론으로 떠들 이유도 없지 않을까. 희년함께 같은 단체도 있는데, 교회도 협력했으면 좋겠다. 

― 혹시 같은 ‘2030’ 세대에게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주: 이미 우리 사는 사회 구조가 악으로 뒤틀려 있지 않나. 우리가 어려운 게 우리 개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항상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걸 알려면 늘 사회적 의식과 자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계속 우리 잘못은 아니라는 공허한 위로만 붙잡으면서 무기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은 어려움과 병을 앓고 있기에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어떻게 행동할지 모색해봐야 할 것 같다. 계란 한 개로 바위를 쳐봐야 아무 영향이 없지만, 계란 만 개가 바위를 치면 바위를 뒤덮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 청년들에게 교회가 힘을 실어준다면 참 좋겠다. 

새나: 세상을 아는 게 희망 같다. 특히나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예배하고 찬양하지만,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방관주의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그런 게 진짜 포기라고 생각한다. 기도 모임 열성적으로 하고 그 안에서 충만하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모르는. 상식이 상실된 시대에 세월호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나도 매일 고민한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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