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호 스무 살의 인문학]

   
▲ "<바키>는 10년째 구독하면서도 여전히 제 연구대상입니다."

아버지 살해
매일 책상 앞에만 앉아있느라 어깨가 결리는 요즘이지만, 제게는 한때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를 되돌아보면 무언가를 진득하게 공부하기보다는 항상 몸을 움직이지 못해 안달이 난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태권도를 하다가 종합격투기로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이런저런 일들로 제대로 도전해보지는 못했지만요. 이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분들이 격투기와 인문학 사이의 괴리감에 신기해하지만, 사실 제게 격투기와 인문학은 비슷한 질감입니다. 두 분야 모두 제게 ‘폭력’에 대한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운동할 때도 저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그 책이랄 것이 지금 읽는 책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시 제가 늘 붙들고 있었던 책은 일본의 격투 만화였습니다. 격투기를 다루는 일본 만화의 형식은 대개 비슷합니다. 병약한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고수를 만나 격투기에 입문하고,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후 최강이 되(어가)는 것이 그 흐름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한 만화가 있었습니다. 저를 완전히 매료시킨, 10년째 구독하면서도 여전히 제 연구 대상인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바키〉 시리즈(이하 ‘바키’)가 그것입니다.

최강의 길로 달려가는 주인공의 발자취에 초점을 맞추는 격투 만화의 전형을 파괴하면서, 〈바키〉는 주인공 한마 바키의 아버지 한마 유지로를 최강으로 상정합니다. 순수한 육체적 힘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행하는 한마 유지로는 그의 아들 한마 바키를 본인에 대적할 만한 상대로 강하게 키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양육은 아내 아케자와 에미의 몫이었고, 바키는 강하게 자라 양친을 만족시키고 사랑 받는 것이 꿈입니다. 어머니의 양육에 따른 자식의 성취가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서사이지요.

그러나 아버지에게 도전한 바키는 무참히 패배하고, 아들을 짓밟는 남편에게 분노해 대든 아케자와 에미는 그의 손에 죽고 맙니다. 바키는 그 이후로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아버지를 꺾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고, 최강을 노리는 여러 격투가들을 만나 겨루고 친분을 쌓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바키는 역설적이게도 아버지를 동경하는 자신을 마주합니다. 너무나도 쓰러뜨리고 싶은 아버지이지만, 평생 그의 등을 쫓기 위해 수련했다는 것을 담담히 고백하지요. 〈바키〉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아버지를 정복하려는, 그러나 이내 아버지와 동화하면서 그에 대한 도전과 굴복을 반복하는 아들을 그리는 지극히 프로이트적인 만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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