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최종편집 : 2017.6.27 화 14:55
기사검색
   
> 뉴스 > 청년 | 스무 살의 인문학
     
죽이지 못한 아버지
[319호 스무 살의 인문학]
[319호] 2017년 05월 24일 (수) 17:39:18 김희림 철학을 좋아하는 20대 인문학도 goscon@goscon.co.kr
   
▲ "<바키>는 10년째 구독하면서도 여전히 제 연구대상입니다."

아버지 살해
매일 책상 앞에만 앉아있느라 어깨가 결리는 요즘이지만, 제게는 한때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를 되돌아보면 무언가를 진득하게 공부하기보다는 항상 몸을 움직이지 못해 안달이 난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태권도를 하다가 종합격투기로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이런저런 일들로 제대로 도전해보지는 못했지만요. 이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분들이 격투기와 인문학 사이의 괴리감에 신기해하지만, 사실 제게 격투기와 인문학은 비슷한 질감입니다. 두 분야 모두 제게 ‘폭력’에 대한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운동할 때도 저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그 책이랄 것이 지금 읽는 책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시 제가 늘 붙들고 있었던 책은 일본의 격투 만화였습니다. 격투기를 다루는 일본 만화의 형식은 대개 비슷합니다. 병약한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고수를 만나 격투기에 입문하고,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후 최강이 되(어가)는 것이 그 흐름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한 만화가 있었습니다. 저를 완전히 매료시킨, 10년째 구독하면서도 여전히 제 연구 대상인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바키〉 시리즈(이하 ‘바키’)가 그것입니다.

최강의 길로 달려가는 주인공의 발자취에 초점을 맞추는 격투 만화의 전형을 파괴하면서, 〈바키〉는 주인공 한마 바키의 아버지 한마 유지로를 최강으로 상정합니다. 순수한 육체적 힘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행하는 한마 유지로는 그의 아들 한마 바키를 본인에 대적할 만한 상대로 강하게 키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양육은 아내 아케자와 에미의 몫이었고, 바키는 강하게 자라 양친을 만족시키고 사랑 받는 것이 꿈입니다. 어머니의 양육에 따른 자식의 성취가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서사이지요.

그러나 아버지에게 도전한 바키는 무참히 패배하고, 아들을 짓밟는 남편에게 분노해 대든 아케자와 에미는 그의 손에 죽고 맙니다. 바키는 그 이후로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아버지를 꺾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고, 최강을 노리는 여러 격투가들을 만나 겨루고 친분을 쌓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바키는 역설적이게도 아버지를 동경하는 자신을 마주합니다. 너무나도 쓰러뜨리고 싶은 아버지이지만, 평생 그의 등을 쫓기 위해 수련했다는 것을 담담히 고백하지요. 〈바키〉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아버지를 정복하려는, 그러나 이내 아버지와 동화하면서 그에 대한 도전과 굴복을 반복하는 아들을 그리는 지극히 프로이트적인 만화입니다.

문명 속의 불만
그렇지만 이 만화가 1991년 연재를 시작한 이래 만화계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앞서 서술한 서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이러한 심리적 설명이 무색해지기 때문입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격투가들의 힘과 그들의 싸움은 현실을 가장하나 철저하게 비현실적입니다. 맹수를 잡고 트럭을 던지고 총을 피하는 격투만화의 클리셰는 애교에도 못 미치고, 공룡 시대에 살던 인간(!)과 싸우고 400년 전의 검객을 불러내어(!) 그와 싸우기도 합니다. 26년을 연재하면서 점점 강해지는 격투가들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갈수록 기괴해집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설정을 비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작품 안에 흐르는 기이한 장엄함 때문입니다. 작중 인물들의 과장된 근육과 몸짓이 굵은 선으로 그려지면서 자아내는 격투의 풍경은 굉장히 진지한데, 그 아래에는 모든 캐릭터들의 하나같은 욕망이 깔려 있습니다. 육체적 투쟁의 최강자가 되겠다는 욕망. 가장 싸움을 잘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힘에 대한 동경으로 뭉친 인물들의 조합은 격투만화에서 지극히 흔한 전형입니다. 그런데 진정 흥미로운 것은, 격투가들이 일정 이상의 힘을 가질 때 시작됩니다.

그들이 곧 마주하는 힘은 ‘국가’입니다. 국가라는 추상은 어떠한 현실태(現實態)를 갖나요? 경찰과 군대입니다.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을, 외부로부터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소유하지요. 격투가들은 근대적 사회 제도와 법체계를 반복적으로 무시하고 심지어 이를 분쇄합니다. 초인적인 싸움으로 초토화된 도시를 보호하려는 경찰을 비웃고, 보안상의 문제로 격투가들을 제거하려는 군대를 박살냅니다. 작품은 괴력의 개인이 현대 국가의 폭력을 억누른다는 불합리를 기어코 합리화하지요. 이에 더해 한마 유지로는 미국과 일대일 수교를 맺기도 합니다. 개인이 국가를 가벼이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키〉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괴력의 미학과 초국가적 힘에 대한 환상은, 도리어 근대성에 대한 열등감의 극적인 현현을 이끌어냅니다. 일본인 무술가가 미군 부대를 전멸시키거나, 동양 무술에 대한 신화적 신앙과 대비되는 서양 무술에 대한 하등한 묘사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서구성과 근대과학에 대한 열패감입니다. 오래 지적되어온, 일본 만화 특유의 미국(그리고 서양)에 대한 패배 의식이지요. 또한 근대의 출현 이래 폭력을 관리해온 국가와 제도의 권위를 비웃는 다소 억지스러운 카타르시스이기도 하고요.

경계의 저편
괴력에 대한 신앙은 싸움을 잘하는 차원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구조의 산물임을 거부하는, 국가로 표상되는 사회 체계에 대한 냉소입니다. 근대성이 포괄할 수 없는 초월에 대한 종교적 선망을 〈바키〉는 순수한 육체적 투쟁으로 근거 지웁니다. 괴수를 다루는 영화에서 괴수들이 도시를 부수고 경찰과 군대를 제압하는 것과 같습니다. 괴력의 미학은 곧 초국가적 힘에 대한 환상 그 자체니까요. 그러나 비현실적인 괴력에 의해서만 가까스로 무너지는 근대성은, 오히려 근대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우습게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러한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바키〉는 근대성 일체의 공시적 구조에 대한 철저한 부정 이후 남는 육체적 힘을 대단히 순수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지상 최강이 되는 것만을 유일한 순수한 욕망으로 상정하고, 근대적 제도 아래에서 탄생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 모든 욕망을 불순한 것으로 취급하지요. 단일하고 순수한 힘에 대한 동경 또한 다분히 근대적일진대, 작중 인물들은 그 힘에 대한 신앙을 변함없이 유지합니다.

그 신앙을 끝까지 밀고나가기 위해 〈바키〉는 그 주제를 보편적인 영웅 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전통적으로 개인 앞에서 무너진 제도는 수정 및 보완됩니다. 구조의 익명적 주체는 자기생산적(Auto-poiesis) 모습을 보이며 조지 오웰의 《1984》가 선명하게 그리듯 개인을 포섭할 수 있는 한층 강한 구조를 건축하고, 개인은 다시 이와 맞섭니다. 그러나 〈바키〉는 다른 접근법을 취합니다. 격투가들은 국가에게 무관심합니다. 작품을 통한 그들의 거시적 역할은 국가 권력에 대한 냉소임에도, 그들은 표면적으로 최강을 노리는 싸움꾼입니다. 제도적 힘에 대한 견제는 일찌감치 간과하고 그들만의 초국가적 힘을 겨루기 바쁘지요.

그래서 〈바키〉에서 근대적 힘은 명백히 드러나지만 깨끗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지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전근대적인 개인들의 결투뿐이니까요. 그러나 작품은 그 싸움들을 통해 근대적 국가를 가벼이 무너뜨리는 초국가적 힘을 상상하고 욕망합니다. 그러나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공권력의 힘과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빛을 발하는 근대적 제도는 앞서 말했듯 근대성에 대한 열등감을 조목조목 드러냅니다. 이기지 못해 외면한, 외면할수록 이길 수 없는 힘은 일관되게 작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죽이지 못한 아버지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내의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상징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입니다. 이러한 가부장의 권위를 확대한 것이 국가의 통치 권력이지요. 신으로부터 이양 받은 전지전능한 왕과 아버지의 힘은 산업 구조의 변동과 시민사회의 등장,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활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신민에서 시민으로 이름을 바꾼 대중 앞에서 왕권과 부권은 그 독점적 권력을 상실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중적 부권상실 과정에서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의 모든 질서는 무너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요?

사랑하는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한마 유지로를 증오하며 복수를 다짐하지만 이내 아버지의 등을 쫓으며 단련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한마 바키를 보며 저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며 무의식중에 증오한 모든 기독교 및 아버지적인 것들을 사실 쫓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제 몸에 새겨진 종교적인 색채를 해체하기 위해 철학을 전공하고 성경과 신학을 공부했으나, 아버지의 박사학위 논문을 읽던 어느 밤에 저는 드디어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젊은 날의 세계관은 어느새 아버지의 신학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격투가 개개인의 무지막지한 괴력들을 통해 근대 국가를 붕괴시킨다는 신비적인 환상이 담긴, 그러나 역설적으로 근대 국가에 대한 열등감을 명백하게 드러낼 뿐인 〈바키〉를 읽으며 저는 ‘촛불’이라는 비공식적인 괴력을 통해 권력의 표상인 박근혜 정부를 몰아냈다는 기쁨에 도취되어 문재인 정부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읽게 됩니다. 촛불을 들어서 정권을 ‘교체’했다는 광적인 기쁨은 아무리 촛불을 들어도 폭력의 독점체인 국가 권력을 ‘해체’할 수는 없다는 절망감을 외면케 합니다. 국가는 촛불에 불타지 않고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하는 오이디푸스적 도취는 주체적 실존을 향한 디오니소스적 쾌락으로 이어지지만, 이내 그 실존은 아버지의 말을 교활하게 옮길 뿐이었다는 헤르메스적 좌절로 치닫습니다. 〈바키〉를 비평하면서 저는 개인과 사회의 역동성이 지향하는 아버지 살해의 이중성을 역설하고 싶었습니다. 죽이려고 하나 그 뒤를 계속 쫓고 있는, 그 뒤를 쫓으나 그를 죽이려는 것.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니체가 그랬던가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죽이지 못한 아버지는 더 강한 아버지가 되어 우리를 정의할 것입니다.

적폐 청산이 유행어가 된 한국 사회에서 죽이지 못한 아버지들을 떠올립니다. 공교육을 통해 유교 문화와 일제시대, 한국전쟁과 독재 정권, 그리고 압축 근대에 대한 성급한 해체와 긍정을 교육받은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로부터 탈피하고자 애썼던 근현대사를 비웃듯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내면화한 저와 우리 사회를 생각합니다. 또한 끝내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한마 바키와 저를 마주하면서 다음 세대의 한국 사회가 극복하면서 닮아갈, 헬조선이라 불리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아버지가 된 모습을 헤아리며 절망합니다. 촛불로는 밝힐 수 없는 그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김희림
장차 전문성과 대중성, 다양성을 겸비한 인문학자를 꿈꾸는 스무살 인문학도. 머리 아픈 철학책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시끄러운 베이스 기타 연주를 즐기며, 비폭력·반전·반핵을 지지하면서 삼류 무협영화 ‘덕후’를 자처한다. 아버지인 김기현 목사와 함께 ‘로고스서원’을 꾸려나간다. 경희대 철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관련기사
· 철학과에 지원한, 그리고 지원할 이들에게· 창과 방패의 해석학
· 김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요
· 콘크리트를 오르는 담쟁이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복음과상황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오시는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06-10 산성빌딩 104호 우)120-836 | 전화 : 02-744-3010 | 팩스 : 02-744-3013
발행인 : 김병년 | 이사장 : 박종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년
Copyright 2008 복음과상황.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