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바울과 편견》

수년 전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교양인, 2006)를 읽었을 때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열일곱 살 때부터 7년을 수녀로 있다가 환속, 이후에 종교학자가 된 그녀의 두 번째 자서전이었다. 《신을 위한 변론》 《축의 시대》 《이슬람》 등 명저들이 많지만, 특별히 이 책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가 더 반가웠다. 저자에게 있어 바울이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음이 기억나서다. 그녀는〈최초의 기독교인〉이라는 6부작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며 바울이라는 우상을 파괴하고자 사명감에 불탔으나, 정반대의 결과에 이르렀다. 바울을 매우 존경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신학적 전제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해서 내가 처음에 구상했던 골격을 180도 바꾸어야 했다.” (마음의 진보, 396쪽)

후에도 꾸준히 바울을 연구한 저자는 〈최초의 기독교인〉(1983)에서 더 나아갔고, 새로운 몇 가지 사실을 추가해 30여 년 만에 《… 바울 다시 읽기》를 썼다. 바울이 인종, 계급, 성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싸웠음을 주장하는 논거로 가득 차 흥미로웠다.

최근 출간된 《바울과 편견》(원제는 ‘Paul behaving badly’)도 인종차별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로 오해받는 바울을 변호한다. ‘동성애혐오자 ‘위선자’ ‘성경을 왜곡한 자’ 등의 혐의를 벗기고자, 당대의 문화적 배경과 바울이 처했던 특정 상황을 매우 탄탄하게 묘사한다.

두 책을 연이어 읽으면서 더 재밌었다. 특히 바울에 덧씌워진 편견을 신학자와 종교학자가 어떻게 ‘다르게’(‘틀리게’가 아니다) 걷어내는지 접근법의 차이를 보는 게 유익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오’(고전 14:34)

“마치 바울이 모든 여자들과 오직 여자들만이 교회에서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구절은 흔히 생각하듯 그리 명료하지 않다. 동일한 편지에서 바울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고 기도하는 올바른 태도에 대해 논의한다. 이로 보건대, 바울은 여성들이 때때로 말하기를 기대하고 또 격려하는 것이 분명하며,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금지는 첫눈에 보이는 것만큼 폭넓지 않다.” (바울과 편견, 143쪽)

“바울의 서신들은 그의 사후 열띠게 필사되었고 3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779편의 원고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 필사한 사람들은 때로 바울이 아닌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절들을 더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 인용된 구절은 거의 확실하게 이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바울 다시 읽기, 173-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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