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르와 성서 읽기 / 르네 지라르 지음 / 마이클 하딘 엮음 / 이영훈 옮김 / 대장간 펴냄 / 12,000원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 인터뷰집이다. 사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는 그의 생애와 사상이 매우 자세하게 담겼다. 특히 그의 핵심 사상인 ‘희생양 메커니즘’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탄하고 조밀하게 형성되었는지 쉬운 ‘말’로 설명되기에, 국내 번역된 어떤 책보다 그의 이론에 쉽게 다갈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이미 《희생양》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등을 통해 성서를 인문학 영역으로 끌어들여 그 안의 ‘흠이 없는 희생양 예수’를 드러내고자 시도해왔다. 이 책에서는 인터뷰어 스티븐 베리의 질문을 통해 그의 성서 읽기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희생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대리적인 희생체계가 가짜이며 기만이고 거짓이란 것을 폭로하신다. 이것이 성서적 계시의 본질이다.”
성서 속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요셉과 형제들, 아브라함과 이삭, 욥, 거라사의 광인, 포도원의 비유, 베드로의 예수 부인, 그리스도의 수난 등이 지라르의 통찰을 통과해 새롭게 해석된다.
“아브라함을 떠올릴 때는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이삭의 희생이라 불리는 장면을 생각하시겠지만 정확히 말해 이삭의 희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동물 희생으로 가는 위대한 전환으로서, 이것은 인간의 진전입니다. 고대 종교 속에 있는 진정한 인간의 진전은 바로 그것이며, 그리하여 성서의 운동은 항상 덜 폭력적인 것으로 향하고 있습니다.”(188쪽)
그러나 인간은 ‘악한 모방’을 통해 경쟁과 폭력을 재생산했다. 누구든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77배로 갚아 줄 것을 약속하는 라멕처럼. 이에 예수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 하셨다.
“이것이야말로 모방적 위기와 희생양 만들기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의 목적은 항상 어떤 폭력도 없는, 수난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202쪽)
우리가 흠 없는 희생양 예수를 모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 도처에 악한 모방(경쟁과 폭력)과 희생양 만들기가 끊이지 않는다. 지라르의 통찰을 더욱 깊이 묵상할 필요가 여기 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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