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 김동문 지음 / 선율 펴냄 / 15,000원

거리에서 중동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어떤 ‘느낌’이 올라온다. 불편함이다. 불편함이 ‘즉각’ 느껴졌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먼저 놀라곤 한다. 이 느낌의 ‘출처’는 도대체 어디일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솟구치는 이 느낌, 배움(지성과 이성)으로 교정할 수 없다면 곧 혐오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니 혐오의 뿌리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 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책 곳곳에 객관적 자료를 소개한다.

“1970년부터 2012년 사이의 국제 테러리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벌어진 2,400건의 테러 중 60건이 이슬람극단주의자에 의한 것이었다. … 전체 사건의 2.5% 비율이다.”(80쪽) 
 
오히려 유대인 극단주의자에 의한 테러가 118건(4.9%), 기독교인이 주로 참여하는 반낙태운동 테러가 168건(7.0%)으로 이슬람극단주의자에 의한 테러보다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미국 메릴랜드 대학 국제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GTD〕 분석. 다른 통계에서도 이 비율은 대동소이했다.) 이외에도 이슬람에 대해 왜곡·과장된 정보는 저자의 끈질긴 ‘팩트 체크’를 통해 대다수 거짓으로 판명된다.
아랍 세계에서 20년을 넘게 살았고, 지금도 틈만 나면 무슬림 이민자를 만나는 저자는 중동 문화와 한국 문화가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남아 선호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전통,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내려가는 훈민정음과 아랍어, 조선시대 여성들이 외출할 때 머리를 가리던 장옷과 중동 여성들의 히잡 등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212쪽) 

이게 뭐 대수냐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이 문장은 이슬람 문화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살피지 않았던 내 인식 세계를 폭로하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우리가 중동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오랜 시간 쌓인 잘못된 고정관념과 어쭙잖은 경험들의 일방통행 때문”이라 진단한다. 나아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제대로 알았다면, 그리고 제대로 알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처럼 무분별한 배제와 혐오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슬퍼한다.

중동 사람을 마주치는 ‘즉시’ 불편함이 느껴졌던 이유는 순전히 내가 게을렀던 탓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제 우리 안의 두려움을 주입·자극해 서로를 할퀴게 만들며 이익을 취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찾아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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