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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삶의 기술이다
[343호 신학서 읽는 네 가지 시선] 김진혁의 《질문하는 신학》(복있는사람, 2019)
[343호] 2019년 05월 28일 (화) 11:17:21 최경환 goscon@goscon.co.kr
   
사진: 복있는사람 페이스북 페이지

1. 저자의 관심

김진혁 선생은 국내에서 영국 신학과 신학자를 가장 잘 소개해줄 수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기독교사상〉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신학자들과 인터뷰를 한 연재 글은 그 자체로 굉장히 귀중한 자료이면서,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았던 여러 신학자를 소개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칼 바르트를 전공하고 C. S. 루이스를 좋아하며, 현대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대중적인 조직신학 개론서를 썼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알고 보니 〈목회와신학〉에 오랜 시간 연재했던 글이 모태가 되어 만들어진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총 9부 36장으로 구성됐고, 각 장의 제목은 모두 질문으로 만들어졌다. 각 장마다 소제목 역시 모두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이 정도 깊이로 균형감 있게 저술한 책은 그 저자가 메모광일 확률이 높다. 혹은 매일 꾸준하게 글을 쓰는 습관이 몸에 밴 학자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춰서 써낼 수 있을까.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행정 일에 치여 정신없는 일상을 보낼 텐데 언제 이런 책을 썼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얼마 전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김진혁 선생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만남을 통해 가장 귀한 공부를 한다고 한다.

2. 편집자의 선택
조직신학자에게는 뭐든 물어봐도 척척 대답을 잘해줄 것만 같다. 나도 평소 조직신학 교수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한 아름 쏟아놓는다. 그런데 정작 책을 통해서 궁금한 내용을 속 시원히 해결한 경우는 많지 않다. 당장 책장에 꽂혀 있는 조직신학 책을 꺼내서 목차를 훑어보라.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을 뭘 그리 장황하게 적어놨는지 모른다. ‘신 존재 증명’이라든가 ‘구원의 서정’과 같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논증이 학문의 세계에서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 신앙생활 속에서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물론 전문적인 조직신학 서적으로부터 실용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신학이 지나치게 사변화되는 경향은 결코 교회를 위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다르다. 기존의 조직신학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순서를 따르면서도 각각의 내용을 모두 실제로 독자들이 궁금해할 주제로 재구성했다. 혹 평소 궁금했던 내용이 아니더라도 신학 질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줬다. 예를 들면 3부 ‘하나님과 세계’에서는 고통과 악의 문제를 자세히 다루는데, 여기서 다루는 질문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전쟁과 질병도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은 고통 없이 우리를 성숙시킬 수는 없는가?
•착한 사람이 더 고통받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은가?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왜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신앙적 물음과 고민을 질문으로 만들어, 유구한 신학의 역사와 이어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물론 독자들이 궁금할 만한 모든 질문이 백과사전처럼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각 장을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선택적 설명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조직신학 책이 가지고 있는 신학의 체계적인 성격과, 저자가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술한 에세이적 글쓰기를 적절하게 결합한 결과물이다. 복잡한 신학 개념을 설명할 땐 이해를 돕기 위한 도표나 그림이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저자의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은 신학이 단순히 논리나 이론의 차원을 뛰어넘는 영역임을 자연스럽게 입증한다. 

3. 비평가의 시선
신학자가 문학과 철학을 다루면서 신학적 개념을 설명하면 혹자들은 ‘뭔가 어설프다’고 비아냥거린다. 반대로 일상과 전혀 상관없는 신학적 담론만을 주장하면 ‘현실을 전혀 모른다’고 비난한다. 이 책은 이런 양쪽의 우려를 불식할 만큼 강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하다. 상상력과 마음을 자극하는 문학적 표현이 신학적 진리를 표현하는 데 아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육신과 부활을 설명하는 다음 표현은 정말 아름답다.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도 오시는 길이자,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구성하는 핵심이자, 타자를 지옥같이 여기던 외골수 자아를 흘려보내는 창조적 사랑의 사건이기도 하다. (329쪽).  

부활이란 … 우리로서는 포착할 수도 개념화할 수도 없는 신비로운 생명(zoe)이 주어지는 사건이다. 따라서 부활을 ‘증명’하는 적절한 방법은 머리를 통한 사변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life)이 충만한 삶(life)을 사는 것이다.  (343쪽)

하나님의 아들은 성육신과 부활을 통해 영원과 역사 사이를 오가시며 무한과 유한 사이의 깊고 넓게 패인 골을 메우셨다. (348쪽)

많은 사람이 신학의 쓸모와 효용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처럼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교회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과연 신학은 왜 필요할까? “몸에 대한 지식 없이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있듯, 신학을 모르고도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32쪽). 실제로 신학을 모르는 우리 교회 권사님보다 내가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여러모로 그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듯, 신학을 배우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과 삶의 여러 측면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신학의 쓸모를 묻는다면, 이 책은 신학이 ‘삶의 기술’(art of living)로서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신학은 교회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먼저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지평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분과 같은 삶을 살고픈 욕망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지식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내용은 19장 ‘욕망론’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욕망을 다룬 신학책은 처음 본다.)

하지만 신학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그 속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사다리는 사다리의 역할만 충실히 해내면 그만이다. 사실 신학 무용론보다 더 무서운 건 신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오만함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처음으로 경탄의 언어를 사용했지만(창 2:23), 그 언어는 금세 “그 존재와 그 존재를 선사한 창조자에 대한 고발의 언어로 바뀌어 버렸다.”(169쪽) 그 후로 인간의 타락한 언어는 계속 헛발질만 해왔다. 그러다 이 언어는 오순절 사건을 경험한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 회복되었다. 성령은 우리들의 왜곡된 욕망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깨”워 주고(571쪽), 예배와 성찬은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과 언어를 제공해준다. 특별히 저자는 성례가 신학과 실천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한다(640쪽). 교회는 성례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된다(642쪽).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개혁신학자들로부터 신학의 원천을 끌어오면서도 현대 신학자들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간간이 집어넣음으로써 독특한 포인트들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을 중시하면서 현대 신학의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기술은 영국 신학자들의 학풍을 닮은 듯하다.  

4. 독자의 취향
이 책은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여러 신앙적 질문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도, 평소 신학의 체계를 잡기 위해 조직신학 책을 한 번 읽어볼까 고민한 성도들에게도,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신학책을 찾는 신학생들에게, 심지어 신학적 글쓰기가 얼마나 현실적이면서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다만, 수려한 문체로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임에도 꽤 두껍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긴 쉽지 않다. 목차에 나와 있는 다양한 질문들을 훑어보면서 그때그때 궁금한 내용을 찾아 골라 읽는 것도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장 말미에 붙어있는 ‘적용과 토론을 위한 질문’을 풀어보길 바란다. 신학을 웬만큼 공부한 사람도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신학의 달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목회자가 이 정도 질문에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교역자 생활 10년만 하면 신학 무용론자가 된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다. 교회 행정과 목회 스킬은 늘지만, 신학 지식과 성경 지식은 고갈되어 매너리즘에 빠진 목회자가 된다는 거다. 그리곤 새로운 신학적 자극이나 도전을 흡수하지 못하고 기성세대 목회자들의 관성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된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이 신학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된 개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39쪽) 

누구나 신학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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