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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서기 위해 ‘함께’ 일하다
[343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343호] 2019년 05월 28일 (화) 11:47:54 김윤동 goscon@goscon.co.kr
   
▲ 2019년 4월 25일 반값매장 햇살나무 리뉴얼 현장. (사진: 협동조합 노느매기 제공)

프롤로그 : ‘스스로’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는 자주적, 자립적, 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통하여 구성원의 복리증진과 상부상조 및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둘 이상 유형의 조합원들이 모여 취약계층의 직업교육 및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주거,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경제적 자립기반 마련과 조합원의 삶의 질 및 생활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위 문장은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www.nnmg.co.kr) 정관 제1조 2항에 명기되어 있는 ‘조합의 목적’이다.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는”에 이어지는 세 단어 “자주-자립-자치”에는 ‘스스로 자(自)’가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자주를 ‘남의 도움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하는 것’, 자립을 ‘남에게 의지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섬’, 자치를 ‘자기의 일을 스스로 처리함’이라 정의할 때,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 그리고 거기 소속된 모든 이들은 ‘자기 스스로’라는 이름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노숙과 노숙인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적 이슈와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 편만해 있는 빈곤에 대한 문제 설정을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한국의 노숙인 문제는 그에 관한 연구와 세간의 주목, 그리고 각계각층의 정책적 지원과 온정적 손길이 적지 않게 이어져 온 분야다.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응당 해결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의미다. 하지만, 처음 문제가 발생한 당시로부터 2019년까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왔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정부나 일부 복지 ‘주체들’(subjects)이 취약계층을 ‘대상’(object)으로 진행하는 일시적·단기적 형태의 물질적 지원 중심의 ‘서비스’에 상당 부분 할애되고 있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사회복지기관이 노숙인에 대해 긴급한 물적·공간적 지원을 넘어 심리적 상담, 건강서비스 지원 등 다각도로 빈곤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빈곤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
이는 비단 노숙인 문제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빈곤 문제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빈곤의 주체를 둘러싼 다층적인 지배 구조와 그들이 놓여 있는 다중적인 사회적 배제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위하면서 은폐하는’ 방식으로, 표면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썩어가는 속살에 주목하기보다 마지못해 피부 바깥으로 터져나온 고름을 닦아 내는 데 집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그 결과 빈곤이 점진적으로 해결되고 있다기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즉 ‘빈곤의 비가시화’가 진행 중이다. 기차역이나 어떤 공간에서 노숙인을 보호시설로 수용시키면 노숙인은 우리 시야에서는 지워진다. 이처럼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욕구를 해결하면 빈곤은 지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결되지 않고 다른 빈곤으로 전이되거나 해결된 것으로 잠정적 합의된 상태, 해결‘당한’ 상태가 돼버리기 일쑤다. 노느매기는 이 점을 주목했다. 

다음은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이전, 2013년 마을기업 및 협동조합 법인으로 시작한 노느매기 정관의 일부인데, 그 문제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노숙의 문제는 그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냉혹한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노숙인의 문제는 파편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 취약한 주거, 신용불량, 관계의 파괴, 고독사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냉혹한 경제구조와 경쟁의 사회 환경이 만들어낸 한 덩어리의 파생물이다. 특히 관계의 단절은 일자리, 주거와 문화, 일상생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고시원과 쪽방의 주거취약계층과 1인 가구로 확대 재생산되어, 점점 더 큰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은 모든 관계가 끊어진 가장 외로운 섬과 같은 삶의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빈곤은 단지 생계 유지 비용이 적은 상태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단순히 화폐로 환원되지 않듯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시아 출신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복지경제학 및 발전경제학의 대가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에 따르면, 빈곤의 정의 및 측정은 소득 수준을 넘어 개인의 역량(capability)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역량이란 한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기능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와 관련된 실질적 자유이자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빈곤은 ‘인간의 기본적인 역량이 박탈당한 상태’로서 새롭게 규정된다. 물론 불충분한 소득, 일정하지 않은 일자리가 빈곤한 삶을 초래하는 강력한 원인임을 부정하진 않지만, 소득과 일자리의 창출 외에도 ‘역량 박탈’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빈곤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의 요체이다. 이처럼 빈곤을 개인의 기본적인 역량이 박탈당한 상태로서 정의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빈곤이란 단순히 배고픈 상태, 생계 비용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소득과 자산과 소비 그리고 교육과 주거의 불평등이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강화하는 하나의 불평등 중첩 구조(‘다중격차’) 속에서 사회로부터 다층적으로 소외된 ‘사회적 배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한데, 오늘날 한국의 사회복지 서비스와 정책은 안정적인 주거가 확보되지 않은 취약 계층들에 대하여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그들을 극한의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고, 일시적인 공공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 불안정으로부터 구제하는 것, 육체적·정신적인 건강 복지를 증진하고, 자치단체 소유의 임대주택을 저가에 공급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외관상으로는 빈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체계적으로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사회복지 지원 서비스는 다차원적으로 구조화되고 고착되고 있는 새로운 빈곤 문제들을 대응하는 것에는 상당히 힘이 부쳐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느매기가 묻고자 했던 ‘주거 빈곤’은 단순히 주거 공간의 공백 문제에 한정하여 살펴야 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역량 박탈과 다른 차원의 불평등이 공존하면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사회적 배제의 최종적인 ‘현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느매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그 대답을 실제로 진행하고 있다.(‘협동조합 노느매기’ 정관 중 부분)

노숙인이 완전히 자립하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첫째, 자립할 수 있는 희망을 주어야 하고, 둘째,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와 함께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유지할 수 있는 생활 능력이 필요하며, 셋째,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체제, 넓게는 지역사회 체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연대하고 협동하는 힘 속에서 가능합니다.

생각만 해오던 일을 실제로 시작하다
그런데 노숙과 주거 빈곤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노숙과 빈곤 문제에서 자활과 자립이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노숙인에 관한 수십 년간의 연구들도 그 점을 지적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에 그치던 일들을 노느매기는 실제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두가 불가능하고 어려운 길이라고 여겼던 그 일을 실제 모델로 시작했고, 여전히 미약하고 어렵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마을기업·협동조합 형태로 영등포산업선교회 내 재활용매장 ‘햇살나무’ 운영과 EM다기능비누, 천연제품 제작 및 판매로 시작한 노느매기는 작년 2018년 더욱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법인을 인가받았다. 그리고 네 가지 사업단·자원재생순환사업단, 영농사업단, 집수리사업단, 급식사업단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농사업은 그 간헐적으로 농활도 하고, 문래동 등 일부 도심 텃밭에서 소꿉놀이처럼 재배하다가 작년에 본격적으로 파주에 땅을 빌려 작물을 심었다. 적은 양이었지만 서리태 콩을 재배하여 아주 실한 수확을 얻었고,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을 하여 나눠 먹었다. 자원재생순환사업은 기존에 해 오던 EM다기능비누사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고, 재활용 나눔 가게였던 ‘햇살나무’ 매장을 ‘반값매장’으로 재단장하였다. 집수리사업은 에너지열관리기능사 자격증, 도배 자격증 공부를 조합원들이 함께 진행하며 몇몇은 시험에 합격하고, 또 다른 이들은 시험에 재도전하며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고, 급식사업단은 올 봄에 본격적으로 햇살보금자리 드롭인센터와 연계하여 한 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냈다. 그 외에도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돌보는 공동체적인 커뮤니티를 복원하고 형성하기 위한 작은 모임들과 밥상 모임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거창한 문제의식과 문제제기에 비해서는 아직 모든 사업들이 걸음마 단계이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같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에는 노느매기를 정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끌어오던 김건호 목사님(노느매기 이사장)까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노느매기는 이름 그대로 ‘하나를 여럿의 몫으로 갈라 나누는 것’을 계속하며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에필로그 : ‘함께’
문자적으로만 생각해본다면, 자활과 자립을 실현하기 위해 ‘노느매기’(나눠먹기)를 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서기,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일을 처리하기 등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라는 명제는 타인의 자리를 내 안에 내주지 않겠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 우리가 사는 실제 삶이 서로 나눠먹어야지만 스스로 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더불어, 외딴섬처럼 내몰린 사람들, 집을 잃고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믿는 ‘나’의 이야기임을 깨달아야 한다. 아직은 너무나 서툴고 미약한 걸음들이지만 ‘작은 나무’들의 작은 걸음들이 모여 숲이 될 때까지 이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윤동
협동조합 노느매기 청년 활동가이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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