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호 에디터가 고른 책]
최근 두 책에서 거의 동시에 《현자 나탄》의 ‘반지 우화’를 접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반지를 하나씩 물려주는데, 아들들이 각자 자기 반지가 신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얻게 해주는 ‘진짜 반지’라 주장하며 다투다가 법정까지 가게 된다. 재판관은 형제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니 셋 다 모두 진짜가 아닌 것 같다며 ‘각자의 반지가 진품으로 효험을 발휘하도록 경쟁하라’고 충고한다. 진품 반지의 효험을 증명하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것. 나탄은 자기를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던져진 질문 “세상에 어느 종교가 가장 뛰어난가?”에 이 우화로 답했다.
다른 종교에 충분히 관용적이면서도 유일무이한 진리 증명 활동은 가능할까? 로베르토 웅거의 《미래의 종교》는 이 모순된 질문의 틈바구니에서 종교혁명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고등종교를 모두 언급하지만, 사실상 기독교를 다룬다. 개인의 갱생은 물론 사회구조의 참된 혁신은 신앙을 통해서(만) 모색할 수 있으며, 환멸의 시대를 건너는 길이 여기에 있음을 강조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진부한 주장일 수 있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새롭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의 종신교수이면서 브라질의 장기계획부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미국 비판법학운동의 창시자로 불리며,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로스쿨 시절부터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졌다.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신학·정치·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현란하게 넘나들고 교차시켜, 책을 읽어나가기 버겁다. 법학자로서 웅거의 책을 다섯 권째 번역해온 옮긴이도 이 책의 신학 사유를 소화하는 데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덕분에 기독교 배경의 독자에겐 익숙한 개념에도 친절한 역주가 달려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7백 쪽에 달하는 이 책의 취지를 ‘오직 한 번만 죽는 삶을 위하여’라고 요약한다. 갖은 우상숭배를 걷어내고, 지금의 삶을 향유하라는 노사상가의 긴 메시지다. 아주 당연하고 상투적인 진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 가끔은 이런 까다로운 책을 좇아가며 도움을 받는다.
■ 이 책과 칼 바르트의 《개신교신학 입문》(복있는사람)에서 ‘반지 우화’를 접했다. (여유가 있다면!) 두 책이 우화에 함축된 불가지론, 행동주의, 다원주의 등을 어떻게 넘어서려 하는지 비교하며 읽어도 좋겠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