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호 스무 살의 인문학]

   
▲ 서울 야경 (사진: Larry Koester)

놀이터의 기하학
디스토피아 문학을 읽는 영문학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SF 소설들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문명을 공간론으로 비추는 수업이었지요. 교수님은 강의 도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다소 뜬금없이 강원도 출신의 수강생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강원도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나 경험들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적잖은 이들이 도박장을 이야기했고, 동해나 정동진에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말하는 이들이 나머지였습니다.

교수님은 도박장과 여행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제 기억에 오래 남을 말을 남겼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교수님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강원도는 하나의 독립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강원도는 서울에 사는 중산층 정상 가족들의 주말 놀이터로 전락했지요. 서울에서 기능할 수 없는 전근대적 환경과 휴양에 대한 욕망이 소비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강원도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문명은 중심과 주변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주변은 중심에게 복종하지요.” 저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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