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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NPO, 문제는 ‘거버넌스’다
[334호 커버스토리]
[334호] 2018년 08월 27일 (월) 14:34:17 최삼열 goscon@goscon.co.kr
   
▲ 2기 공경아 교육 과정 수료 후 기념 촬영 중에 (사진: 최삼열 제공)

2007년 여름이었으니 11년 전이다. 대학 선교단체 간사 임기가 끝난 후 ‘비영리 단체 경영’(NPO management)을 공부하겠다며 미국행 짐을 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모할 정도로 대책 없는 결정이었고 덕분에 고생도 좀 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살아있다. 당시엔 대학 선교단체 간사로 일하고 나면 대부분 신대원으로 진학해 목사가 되거나 혹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진로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교회와 해외 선교지 외에도 중요한 공간이 있다고 보았다. 시민사회, 흔히 시민운동이라 불리는 영역이다. 선한 의지와 자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할 공간이 많아 보였고, 사회적 참여가 여전히 낯선 교회를 위해서도 좋은 플랫폼이 되리라 믿었다.

1.
‘기독교 시민운동’을 꿈꾼다고 하거나 ‘기독 비영리 단체 실무자’로 일하고 싶다고 하면, 약속이나 한 듯 ‘목사 안수를 받고 일하면 훨씬 유리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들 날 걱정해서 한 말이었고 현실을 반영한 지혜로운 가이드였다. 나 자신이 간사로 일하면서 수없이 겪은 일이기도 하다. 초청받아 교회 강의를 가거나 수련회 장소 섭외 등으로 교회와 접촉할 때 ‘목사’와 ‘간사’의 차이는 눈에 띄게 드러났다. 교회의 의전 프로토콜에는 오직 목사와 목사 아닌 자의 구분만 있는 것 같았다. 아, 선교사도 일단 한 수 접어주던가.

어쨌든 현실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엔 아직 젊었나 보다. 걱정하는 말들에 부드러운 미소로 비껴갔지만 속으론 ‘아뇨, 목사는 안 합니다. 앞으론 오히려 목사 타이틀이 일하는 데 장애가 될걸요?’ 이런 생각을 했다. 확고한 신념이나 날카로운 미래 예측이었을까? 천만에! 그냥 절반은 막연한 느낌, 절반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명망가 중심의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기독 시민단체도 ‘목사 중심, 교수 중심 운동’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목사나 교수가 아니어도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중견 활동가가 더 많으면 좋겠다,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합당한 인정과 존중을 받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전문성이란 무엇일까? 시민운동이 소수의 독점물이 아니라 시민 속으로 더 넓게 퍼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시 나의 결론은 ‘비영리 단체 경영’이었다.

당시 시민운동은 대정부 관련 이슈 파이팅을 하며 성장해 왔지만, 정작 내부 조직을 추스르고 단체를 투명하게 경영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박봉으로 일하는 활동가들의 복지와 처우 개선은,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 앞에서 배부른 소리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거대 이슈에만 매달려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갈 판이었다. 조직 운영을 개선하지 않으면 조직이 목표로 하는 미션(mission)도, 궁극적 목표인 사회의 변화도 이룰 수 없어 보였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조직 내부의 개선 요구는 사소하게 취급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비영리 단체 경영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경희대와 성공회대 NGO대학원에 비슷한 과정이 있었으나 커리큘럼이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미국 쪽 대학을 찾아보니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어마어마한 자료가 나와서 오히려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두 분의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을지 모른다. 선배 간사 중에 특이하게 비영리 단체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가신 분이 마침 한국에 잠깐 방문하셨다는 소문을 듣곤 어떻게 연락처를 구해 다짜고짜 만나달라, 고 졸랐다. 원래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인데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나 모르겠다. 김경수 목사(현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사무국장)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2호선 을지로입구역 구내 카페에서 그렇게 이루어졌다.

또 한 명의 선배는 황병구 한빛누리 본부장이다. 평소 모든 복음주의운동엔 그의 자취가 느껴진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어느 날 뜬금없이 MBA 공부하러 미국 가더니 5년 만에 돌아온 직후였다. 비영리 단체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MBA를 했다는 얘기를 듣곤 머릿속에서 불이 반짝,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일하던 신설동 사무실을 방문하여 대화하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두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미국에 공부하러 갈 결정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인 것만 같다.

나는 지금도 이 두 분과 함께 일하는 기쁨을 누린다. ‘비영리 단체 실무자들의 성장과 협력, 생태계의 확장을 위해’ 공익경영아카데미(이하 공경아)를 벌써 몇 해째 함께해 왔다. 기독교 계통 비영리 단체들의 운영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낀 박형철 이사(현 ㈜대일건설 전무)가 비영리 단체 경영을 공부했거나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모임을 꾸렸다. ‘올바른 일’을 한다는 이유로 ‘올바르지 않은 방식’을 관행처럼 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라고 하면 이유가 되려나.

우리는 1년 가까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공부도 하고, 대화하며 논의도 하고, 때로는 미래 계획도 세워 보았다. 비슷한 문제의식, 비슷한 관심을 가져서일까. 대화는 술술 풀렸다.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 관행에 함께 분노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동료 활동가들을 안타까워했다. 이전에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선행 학습도 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사 프로그램을 참고하기도 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시간은 무척 유쾌했다.

3.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을 보낸 후 공경아를 시작했다. 일단은 실무자들의 성장을 돕고 실무자들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무자뿐 아니라 단체의 책임자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책임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실무자는 오히려 절망만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체의 실무자와 책임자가 동시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했고 그런 단체에 우선권을 주었다.

2014년에 시작한 공경아는 올해까지 6번의 정규 과정을 진행했고, 그 외에도 수차례의 심화 강좌, 명사 초청 특강을 열었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정규 과정의 주요 강좌는 다음과 같다. 비영리 단체로의 초대와 소명 의식, 누구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숫자는 무엇을 알려주는가, 모금이란 무엇인가, IT기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 나는 활동가인가 노동자인가, 비영리 경영의 전략과 혁신은 무엇인가, 실무자는 어떻게 기획자로 성장하는가, 책임자의 일은 무엇인가, 중간리더는 누구인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인가 등등. 그간 다룬 주제로만 본다면 비영리 단체 경영대학원 커리큘럼을 대부분 포괄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공경아를 시작하기 1년 전부터 논의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기획위원이란 이름으로 참여했다. 그중 일부는 강사진으로도 활약했는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들이란 측면에서 일견 타당한 결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강의 하나를 덜컥 맡게 되었다. 부담이 컸지만 피할 수 없는 잔(cup)도 있는 법. 어쩔 수 없다면 평소 가진 문제의식에 대해 공부하며 준비하는 게 그나마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내가 문제의식을 가진 부분은 리더십, 그중에서도 흔히 거버넌스(governance)라 불리는 이사회 구조였다.

비영리 단체 운영에서 실무자들이 가장 가려워하는 부분은 아마도 모금과 회계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비영리 단체들은 후원자들의 기부금이 가장 큰 재원이므로 어떻게 모금할 것인가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회계 관리와 회계 투명성도 점점 기준이 높아지는 추세여서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었다. 회계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회계 처리에 어려움을 겪은 단체들이라면 뼈아픈 교훈을 얻었을 법도 하다. 비영리 단체의 모금과 회계에 관해서는 다른 단체들이 선구자적인 노력을 한 덕분에 인식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회에 대해서는 여전히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강조되거나 이사회만을 위해 전문적으로 돕는 단체,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비영리 단체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그 핵심에 이사회 구조가 있다고 본다. 이사회야말로 비영리 단체를 다른 조직(정부, 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성격이 되게 만드는 중심추라고 생각한다. 이사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운동/단체가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운동/단체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기독교 비영리 단체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비영리 단체 이사회는 어떤가? 사회적 명망에 따라 명예직처럼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자신들이 공동 회장단이나 대주주인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이사회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Role and Responsibility)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없으니 이사회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이사회는 자기 단체의 미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자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사는 자기 회사의 일을 단체의 실무자에게 부탁하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다 겪어 보고 하는 소리다.

그런데도 기존의 이사회는 교육받는 걸 싫어한다. 대다수 목사, 교수, CEO여서 그렇기도 하고, 비영리 단체 이사를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이사의 역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면 잘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저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전문성이 길러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비영리 단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분들이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른다면 큰일 아닌가. 어쩌면 그동안 비영리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한 것은 모금이 부족해서도, 실력 있는 활동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4.
그렇다면 비영리 단체 이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사회를 돕는 대표적인 전문 단체 중에 미국의 ‘BoardSource’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펴낸 책 중 《이사회의 10가지 역할과 책임》(Ten Basic Responsibilities of Nonprofit Boards)에서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역할을 정리해 놓았다.

 • 단체의 미션과 목적을 결정하라  • CEO를 채용하라
 • CEO를 지지하고 평가하라  • 효과적인 계획을 세우라
 •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모니터하고 강화하라
 • 적절한 재정을 마련하라  • 유능한 이사회를 만들라 
 • 자산을 보호하고 재정 상황을 감독하라
 • 법적·윤리적 진실성을 확보하라  • 단체의 공적 지위를 높이라

복잡해 보이지만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 한다.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재 우리 단체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동안 관행으로 여겼던 역할과는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10가지 역할과 책임을 뒤집으면 이사회가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도 나온다.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핵심 원칙은 ‘governance(통치)’와 ‘management(경영)’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이사회는 ‘governance’를 해야지 ‘management’를 하면 안 된다. 이 차이만 구별할 수 있어도 많은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이사회가 모일 때마다 짧게라도 시간을 내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브레인스토밍한다면 꽤 많은 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정기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1-2년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길게 시간을 내어 모여야 한다. 이사회 리트릿이라 해도 좋고 세미나, 워크숍, 혹은 연수라 해도 좋다. 2박 3일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다면 효과적인 모임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단체의 이사회 매뉴얼을 리뷰하고 개정하는 시간을 가지고, 신규 이사회 멤버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자료도 개정할 수 있다. 단체의 미션을 정기적으로 리뷰하고, 중장기 전략을 검토·수정할 수도 있다. 이사회 멤버 구성이 적절한지, 단체의 주요 목표에 따라 필요한 신규 이사회 멤버를 어떻게 영입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사회 모임 자체와 이사회 멤버 개개인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어떻게 후속 조치를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정서상 한번 이사로 모신 분을 본인 의사에 반하여 중도에 그만두게 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니 신규 이사의 선발과 오리엔테이션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선발 전에, 그리고 선발 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단체의 역사와 사명, 정관, 역할과 책임, 예산, 주요 사업과 목표, 소위원회 소개, 시설 방문, 대표 및 직원들과 교제 등을 해야 한다. 오리엔테이션만 충실하게 이루어져도 훨씬 효과적인 이사회가 된다. 실상은 신규 이사 오리엔테이션을 제대로 하는 곳이 거의 없으며, 심지어 오리엔테이션 자료가 구비된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니 신규 이사를 영입한 단체의 기대와, 이사가 되기로 결정한 개인의 기대가 어긋나서 서로 불편한 상황이 종종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공경아에서 나의 강의는 과녁을 빗나간 화살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사회를 앞에 두고 할 얘기를 실무자와 대표들을 놓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무자들 또한 이사회를 잘 돕고 협력하는 일은 필수적이기에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단체의 대표들은 자신의 시간 상당 부분을 이사회에 할애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꼭 들어야 할 내용이기도 했다. 그간 공경아 수료생들 중 나의 문제의식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공감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이사회를 위한 상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를, 이사회만을 돕는 전문 단체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최삼열
한국교회탐구센터 대표간사. 러너(runner)로 기억되고 싶은, 그러나 달리기 기록은 형편없는 40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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