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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운동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때
[334호 커버스토리]
[334호] 2018년 08월 27일 (월) 14:54:07 이용찬 goscon@goscon.co.kr

우리는 매일 개인 경건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을 통해 ‘나’를 돌아봐요. 그것으로 내가 가진 은사를 재확인하고, 미션그룹을 통해 그 은사를 꽃 피우죠.

세이비어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 방문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던 마저리가 한 말이다. “수십여 년이 넘도록 세이비어교회가 지역 내의 영향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묻자 이렇게 답한 것이다. 워싱턴에 위치한 세이비어교회는 도시 빈민에게 주거, 직업, 의료 등 삶의 전반적인 필요를 제공하기 위해 ‘미션그룹’이라는 소규모 NPO들을 조직·운영해 왔다. 비교적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내 구제 사역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곳인지라,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바하밥집’에서도 세이비어교회를 주제로 스터디도 했었고, 그렇기에 이번 해외연수 일정 중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하나의 비영리 운동이 지속되기 위한 어떤 메커니즘이나 대규모의 후원자를 마련하기 위한 열 가지 방법 따위는 그녀의 입에서 열거되지 않았다. 다만 마치 대박 음식점 사장님이 비밀스레 3대째 내려온 레시피를 귀띔해주듯, 담담하게 자신의 삶과 세이비어교회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이 비결(?)을 일러주던 모습은 그 날 워싱턴에 내리쬐던 햇볕처럼 자랑스럽고 따스하게 빛났다.

   
▲ 사진: 이용찬 제공

일상의 관성이 의미를 앗아갈 때
올해로 일한 지 4년차가 되어가는 나의 직장 ‘바하밥집’은, 이름 탓에 종종 식당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예전에 주방과 사무실이 함께 있을 당시엔, 식당인 줄 알고 불쑥 사무실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사실은 도시 빈민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나에겐 성경에서 그려지는 가난한 자와 함께하셨던 예수의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고, 그 발치라도 닮고자 애쓰는 바하밥집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대학교 신입생 때 다른 어떤 선배들보다 밥 잘 사주는 선배가 제일이듯이, 굶주린 이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처럼 위대하고 성스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싶었다. 이 날것의 욕망을 성실하게 채워주는 바하밥집의 사역은 진로 문제로 방황하던 나의 마음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졸업 후 바하밥집은 나의 일터가 되었다.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여느 활동가들이 그렇듯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의 포부는 대단했던 것 같다. 손님(바하밥집에서는 식사를 하러 오시는 모든 분들을 ‘손님’이라고 칭한다)들 한 분 한 분을 눈으로 좇으며 때론 그들의 삶의 무게가 내 안에 잠겨 눈물 짓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의 끝없는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열정의 과잉’이 모든 집단의 신입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더 애써 그들을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려 했던 나의 몸부림은 어쩌면 ‘가치’를 끊임없이 좇지 않는다면 허상이 되는, 비영리 운동의 특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충분한 금전적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의 성과가 가시적인 결과물로 바로 산출되는 것도 아닌 비영리 운동 안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이 단체의 존재 이유가 되는 대상자뿐이니 어떻게든 나의, 그리고 바하밥집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살리는 일에 본능적으로 애썼던 것이리라. 그들을 살리는 일이 나와 바하밥집의 가치였고, 그 가치를 좇아가는 것으로 바하밥집과 그 안의 나는 ‘살아 있다’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매일의 업무는 모든 것을 무뎌지게 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손님들을 향한 나의 눈짓은 어느 순간 통제와 감시의 눈빛이 됐고, 밤새 손님들을 위해 고민하던 마음은 어느새 어서 휴일이나 왔으면 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의 마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일상의 관성 속에서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비단 나의 박약한 의지 탓이었을까? 아니다. 나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파도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그 파도는 매일매일 모래사장에 써 내려간 가치의 증명서들을 휩쓸어갔다. 그렇게 가치를 잃어버린 나의 업무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이는 곧 비영리 운동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바하밥집의 죽음과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내 안에 떠돌았다. 내일이 되면 일상은 다시 어김없이 되풀이될 것이고, 반복되는 일상의 풍랑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시체로 떠다닐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바로 이 부분에서 마저리의 답은 유효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출발은 호기로웠겠으나, 똑같은 사역의 일상은 반복됐을 테고, 일상의 관성은 그들을 덮어 어느새 의미를 잃어버려 빛바랜 구슬을 매만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일상의 관성에서 넘어지지 않았고, 이내 빛을 되찾은 보석마냥 빛나고 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경건시간’에 던지는 질문
해답은 그녀가 얘기했듯이 ‘우리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매일같이 처음 질문으로 돌아왔던 그들의 습관에서 찾을 수 있다. 각각의 미션그룹들은 매일 본인들의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경건시간을 통해 다시 출발점을 돌아봤다. 이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그들의 은사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되새겼던 것이다. 이러한 경건시간의 연속은 일상의 업무처럼 관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섬길 대상에 대한 새로운 마음과 시선들을 열어주고, 그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이 움직임이 일상의 관성이 만들어내는 파도에서 그들을 건져내었고, 오히려 그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하기 며칠 전 필라델피아에서 방문했던 ‘에스페란자 헬스센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에스페란자 헬스센터는 필라델피아 빈민 지역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1차 의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대상자의 전반적인 삶을 돌봐주는 곳이다. 그곳에서도 비슷한 질문과 비슷한 답이 나왔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매일의 고정된 경건시간. 그 시간 속에서 일의 본질을 되찾고 다시 나아갈 채비를 단단히 하는 것! 성경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 비영리 운동이 가질 수 있는 차별성이자 힘이지 않을까.

비전을 충분히 이해할 때  
이번 해외연수 일정 중에는 비영리 단체뿐 아니라 실리콘밸리도 몇 군데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에어비앤비’를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던 분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일을 해요. 그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그 비전에 부합하는 것은 가감 없이 수용하지요. 이곳에 속한 모든 전문가들은 그 비전을 위해 자신의 최선을 발휘해요. 그리고 그 열매는 회사의 것인 동시에 내 것이기도 해요.

자신의 반려견을 데리고 출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라든지, 회사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운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을 자아냈다. 나아가 자신이 몸담은 기업의 분명한 비전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지하여 그 비전에 함께 발맞추어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다.

이는 방향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단체가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가 분명하지 않다면 외부의 크고 작은 압력에 쉽게 흔들린다. 단체의 방향성이 확고하다고 해도 업무를 진행하는 활동가들이 인지하지 못하면 그 방향성은 무용지물이 된다.

바하밥집의 비전은 대다수 노숙인이 노숙을 더욱 잘하게 돕는 것, 그리고 노숙인 한 사람이 공동체를 통해 자활하는 온전한 사회인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 분명한 비전을 갖기 이전에는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이들을 자활시키고자 했던 의지는 치기 어린 열정일 뿐이었고, 공동체가 없는 자활은 공기주입이 없어 맥없이 쓰러지는 풍선 인형과도 같았다. 그때에는 외부의 말이나 시선에도 단체가 쉬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분명한 비전을 갖춘 지금의 바하밥집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성실히 가야 할 길을 간다. 문제는, 앞에서 얘기했듯 그 안에서 실무를 맡아 진행하는 내가 그것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할 때이다. 이를테면 단순히 개인적인 긍휼로만 대상자들을 대하고 도우려 한 선의가 실제 그가 자활하는 길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내가 지금 타고 있는 배의 방향을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해외연수는 매일 출발점을 되새김질하고,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반복되는 업무 틈에서 가장 잃기 쉬운 이것이 우리의 비영리 운동이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바다 건너 먼 대륙의 봉사자들로부터 다시 깨닫고 배웠다. 물론 이것이 바로 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위에 꾸준한 시간의 자양분을 내릴 수만 있다면 바하밥집 역시 탐스러운 열매를 가득 맺는 단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역시 언제든 ‘살아 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용찬
바하밥집 관리지원팀장이다. 꿈도 없고, 야망도 없지만, ‘간지’ 나게 살고는 싶은 서른두 살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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