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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평화상, 김복동
[336호 시사 잰걸음]
[336호] 2018년 10월 29일 (월) 15:37:26 박제민 goscon@goscon.co.kr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몇몇 외신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수상자로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근거는 해외 도박 사이트였다. 그런데 노벨평화상 후보자 추천은 올해 1월에 마감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연설을 통해 북한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 지난해 9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화답한 것이 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만난 것이 올해 4월의 일이다.

지금 돌아보니 올해 남북 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지만, 노벨평화상 후보자 추천이 마감됐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별 볼 일 없었다. 이래서 인생 선배들이 거듭 간곡히 말하는 것이다. 도박은 손대지 말라고.

   
▲ 데니스 무쾌게 (사진: 위키미디어)
   
▲ 나디아 무라드 (사진: 위키미디어)

데니스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올해 노벨평화상은 데니스 무퀘게와 나디아 무라드가 공동으로 받게 됐다. 노벨평화상을 주관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전쟁과 무력 분쟁의 무기로써 성폭력을 사용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력했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데니스 무퀘게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의사다. 오순절 교회 목사였던 아버지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자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의학을 공부했다. 1999년에 ‘판지병원’을 세우고 약 85,000명 이상의 산부인과 환자들을 치료했는데, 그중에 60% 이상이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을 당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들을 치료하고 돕는 데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2012년 9월에 유엔에서 연설을 통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규탄하고 정부가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한 달 뒤에 암살 시도가 일어났는데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가족까지 위험해지자 프랑스로 피신했지만, 돌아와 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2013년 1월에 돌아왔다. 그가 오는 날에 환영 인파가 공항에서부터 30km 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암살 위협을 받고 있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경호를 해준다고 한다.

나디아 무라드는 이라크의 소수 민족인 야지디족 출신이다. 2014년에 근본주의 무장단체인 다에시(Daesh)의 공격을 받아 가족을 잃고 자신은 사로잡혀 성폭력을 당했다. 3개월 만에 극적으로 탈출해 난민 캠프로 피신했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다에시의 성폭력을 증언했다. 그 후 독일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아 독일에 살면서 난민과 야지디족을 위한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2016년에 유엔의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첫 번째 친선대사로 임명됐고, ‘나디아 이니셔티브’를 설립해 성폭력 피해자와 난민을 돕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독일에서 활동하는 야지디족 인권운동가 아비드 샴딘과 약혼한 사실을 깜짝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디아 모라드는 수상 발표 후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라크인, 쿠르드인, 전 세계의 모든 소수 민족, 성폭력 생존자들과 이 상을 나누고 싶다”며 모든 나라가 집단 학살과 성폭력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촉구했다. 수술실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데니스 무퀘게는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인에게 성폭력과 맞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의도한 발언인지, 의례적 표현인지는 몰라도 일본 입장에서는 뜨끔하지 않았을까? 이어질 이야기는 이에 관한 것이다.
 

   
▲ 앞줄 왼쪽이 김복동 할머니 (사진: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김복동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된 후, 윤미향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번에 전시 성폭력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나왔으니 앞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공개한다고 했다. 그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운동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분들은 누가 뭐라 해도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입니다” “셋이 수상자가 되었다면 그 의미가, 세계 여성인권운동사에 주는 힘이 엄청났을 것입니다”라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왜 김복동 할머니는 빠졌을까? 윤미향 이사장은 “그들은 콩고와 이라크는 선택했지만 일본은 숨겼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벽이 참 끔찍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수십 년 동안 총칼 없는 전쟁터인 민간외교 영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해온 활동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느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언론은 대부분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짧은 뉴스로만 보도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26년에 태어났다. 올해 우리 나이로 93세다.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이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15세 되던 해에 강제로 끌려갔다. 거역하면 전 재산을 몰수하고 다른 나라로 쫓아낸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 공장에 가서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 ‘위안부’였다.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성폭력을 당했고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20세기 들어 아시아 각지를 점령했던 일본군은 자주 성폭력 사건을 일으켜 반일감정이 거세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군인들이 성병에 걸려 전투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군은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군인들의 성노예로 삼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군이 직접 하기도 하고 민간업자들이 대신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일본군의 주도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표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읽는 분들은 ‘위안부’를 쓸 때 꼭 작은따옴표를 붙이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다. 범죄의 주체인 일본군을 반드시 적고, ‘위안’이란 말도 일본군의 입장에서 사용된 표현이기 때문에 꼭 작은따옴표를 붙인다. 영어로는 보다 직접적으로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일본에 의한 군 성노예)’으로 표현한다.

예전에는 ‘정신대’ 또는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뒤섞여 사용됐다. 엄밀히 말해서 정신대는 다른 개념이고, 종군위안부는 잘못된 표현이다. 정신대는 앞장서 일한다는 뜻의 ‘근로정신대’의 줄임말로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신대와 ‘위안부’의 구분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뒤섞여 쓰이거나 정신대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다. 또 ‘종군’에는 스스로 군대를 따라나섰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종군위안부’란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1988년 4월 1일에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이화여대 윤정옥 교수의 발표를 통해 일본군의 성폭력 범죄가 밝혀졌다. 1990년 11월 16일에는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만들어졌다. 1991년 8월 14일에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혔고, 9월 18일에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 신고전화’가 개설됐다. 1992년 1월 1일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조용히 살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으로 나온 것은 이때였다. 1992년에 텔레비전에서 피해 사실을 신고해달라는 뉴스를 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셨다.

“이젠 내가 할 일이 있으면 하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이 26년째다.

운동가로서 김복동 할머니의 관심과 활동은 넓어졌다. 국내에서는 미군 기지촌 여성들과 연대했다. 세계 곳곳에도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으면 그 돈 전부를 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쓰겠다고 선언했다. 그 뜻을 기리고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비기금’은 콩고민주공화국과 베트남의 성폭력 생존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2017년에는 전 재산을 내놓아 ‘김복동 평화기금’을 만들어 젊은이들과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에 당시 박근혜 정부가 느닷없이 일본 정부와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일본이 돈을 내서 재단을 만드는 대신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되돌릴 수 없이 해결된 것으로 치고,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 ‘화해·치유재단’이 생겼다. 재단이 있는 것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9월 3일에 화해치유재단의 즉각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 첫 번째 참가자로 나섰다. 암 수술을 받은 지 5일 뒤,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7일, 유엔 총회 현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금도 매주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나간다.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이용수 할머니 (사진: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내 마음에 평화상
김복동 할머니가 데니스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면 어땠을까? 정말 세계 인권운동사에 큰 획을 긋는 엄청난 사건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내 마음에 평화상을 김복동 할머니와 살아계신 할머니들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들께 드리고 싶다.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인 나옥분 할머니(나문희 분)의 연설을 수상 소감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일본군의 만행으로 꿈이 짓밟힌 수많은 소녀들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그 소녀들이 겪었던 고통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이야기합니다. 일본은 강요와 협박으로 우리를 성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지옥 같은 기억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일본의 뻔뻔한 태도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더 고통받고 분노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들이 용서받을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목숨이 붙어있을 때 ‘I a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후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인정하고 사과하시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꼭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꼭 기억해주세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슬픈 역사를.”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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