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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경제 질서에 맞서는 은혜와 나눔의 공동체
[346호 제국과 하나님 나라] 빌립보서 다시 읽기 3
[346호] 2019년 08월 28일 (수) 11:35:00 한수현 goscon@goscon.co.kr

빌립보에서 시작된 ‘바울의 실험’
바울의 에클레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 이를 대개 ‘역사적 재구성’이라 하는데, 글을 읽고 해석하는 이들이 자주 시도하는 일이다. ‘역사적 재구성’이란 어떤 글을 쓴 이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경제적 환경과 주변 상황, 가족관계 등을 고찰하여 글쓴이가 살았던 삶을 재구성하는 일을 뜻한다. 개인의 상황을 좀 더 확대해 이해하면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역사적 상황, 사회적 정황이 된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같은 사람이 쓴 글이라 해도 박근혜 정부 시기를 살면서 쓴 글과 문재인 정부 시기를 살면서 쓴 글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인권, 평화 등을 주제로 하는 경우, 시대적 환경의 변화는 작가의 주제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바울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바울의 시대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2천 년이란 시간을 넘어서 바울 시대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흔히 그 작업을 생략하고 바울을 만나기 위해 성서를 펼쳐들고는 사도행전의 이른바 ‘바울의 회심 사건’이라 불리는 본문으로부터 그를 이해하려 한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쓴 글도 아니고 그 저자조차도 바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생각한 교회사의 한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는 예수의 복음이 땅끝으로 전해졌음을 알리는 데 있다. 아울러 그것이 예수가 이 땅에 온 목적임을 독자들이 믿기 바라는 마음으로 사도행전을 저술했다. 즉, 메시아의 오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복음전도라고 설득하고자 한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 저자의 의도를 충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등장하게 되었다.

소위 ‘회심 사건’으로부터 바울을 이해하고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그의 일대기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교회라는 조직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회심 사건에서 시작된 바울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모태신앙인들은 자신의 부모나 구한말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탕자처럼 살면서 하나님을 미워하다가 특별한 체험을 하고 회심하여 목사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현대의 교회에도 넘쳐난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바울이 세운 교회는 도시의 어느 골목에 한 사역자가 믿음으로 개척한 개척교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회심한 사람들이 모이고 자신들이 잘못된 신앙이나 종교를 믿다가 지은 죄들을 고백하는 사람이 모인다. 즉,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바울이 세운 에클레시아와 현재의 교회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흥미롭게도 사도행전의 소위 ‘회심 사건’을 바울 이해에서 어디쯤 놓을 것이냐에 따라 바울신학자들의 시각도 극명하게 대조된다.

어떤 이들은 그 사건에 역사성을 부여하여 바울의 삶과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건이라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단지 바울이 이방인들에 대한 소명을 확인했다는 정도의 의미만 부여한다. 필자는 후자 쪽인데, 바울이 이미 스스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변함없이 주장하고 있고,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랑스러워했으며, 로마서 11장에서는 유대인들 또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들어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바울의 생애는 ‘회심 사건’을 기점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궤를 가진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로 번역되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이해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49-50년에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이 세운 최초의 에클레시아가 이전의 기독교 공동체와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상상해보았다. 물론 이는 필자의 순수한 상상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기본으로 한 학문적 가능성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로마식 도시화가 진행되는 지역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바울의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제국’에 대한 유대 공동체의 희망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 이전의 기독교 공동체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건설되었다. 아마도 당시 선교는 먼저 각 도시의 시나고그(회당)를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은 바울 시대에는 유대의 종교 중심지인 성전의 예식을 존중하면서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성전 파괴 이후의 유대주의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을 유대교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하기 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디옥의 유대인들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지난 글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중요한 율법 중 하나인 음식법을 존중하기 위해 식탁을 구분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여전히 이전의 유대교적 신앙 형태를 크게 변화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세례나 주의 만찬과 같은 모임을 위한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나 그런 모임들은 당시 사회에 흔하게 있었던 모임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도행전에서도 확인되듯이, 바울 이전의 에클레시아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나하나의 지역적 공동체를 의미하기보다는 전체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였다(박영호). 예루살렘은 그런 전체 에클레시아의 중심이었고 당연히 사도적 권위와 질서가 중시되었다. 게다가 아마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에클레시아는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이자 다윗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를 서술하는 사도행전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행 1:6, 새번역) 이에 예수는 대답한다.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1:7) 그리고 뒤를 이은 명령이 바로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다. 즉, 사도행전이 쓰여진 시대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아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 시대의 기독교 공동체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며 그 회복은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큰 관심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겐 여전히 히브리 성서의 율법의 의미와 약속의 성취가 중대한 것이었다. 바울은 처음에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회복에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바울은 이 공동체가 가진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 위험은 당장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으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 안에 지속되는 유대적 우월주의에 숨어 있는 새로운 제국에 대한 희망이 그것이었다.

예수는 새로운 제국의 왕인가? 로마제국을 꺾고 이스라엘을 새로운 강대국으로 세워주실 것인가? 또는 예수의 ‘하늘의 제국(천국)’은 새로운 제국인가? 그래서 그를 따르는 자들은 구원하고 그렇지 않은 로마의 시민들에게는 심판을 내릴 것인가?

보통 위와 같은 논의 또는 논쟁은 끝도 없고 대안도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 여성주의(feminism)는 그런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도록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데 관심을 가진다. 이 논의는 자연스럽게 여성이 구조적으로 당하는 불이익을 인정하고 우선은 여성에게 좀 더 많은 기회와 배려를 마련하는 정책으로 나타난다. 이때 이를 대변하기 위해 언급되는 ‘여성의 독립성과 우수성에 대한 재발견’은 주변 사람들에게 여성우월주의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때 누군가는 질문한다. ‘그럼 여성이 중심이 된 사회는 바람직한가? 이때까지 남성들이 사회에서 좀 더 많은 기회와 권리를 누렸다고 하여 여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여성에게 우선권을 준다면, 그것은 여성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지 않나?’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은 차별의 대상이다. 차별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월주의가 아니다. 차별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만큼 허망한 논의도 드물다. 그렇다면 피식민인의 삶을 살면서 로마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 예수가 왕이 된 새 이스라엘을 꿈꾸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그것이 잘못이라면 도대체 바울에게는 무슨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인가?

바울은 철학적 논쟁이나 신앙적 설교의 차원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운 공동체 에클레시아를 통하여 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의 대안을 살펴보려면 종교와 신학의 눈이 아니라 바울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 전체를 상상하는 눈이 필요하다.

화폐·법질서의 로마제국 vs. 은혜·선물의 공동체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르셀 에나프(Marcel Henaff)는 《진리의 가격》(눌민)에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근대를 꿰뚫는 돈과 진리에 관해 논한다. 에나프는 선물 또는 은혜라는 고대의 개념이 화폐의 역사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의 연구를 논하면서 그들이 은혜라는 단어가 가진 무조건적 내어줌을 도덕이나 종교적인 영역에 한정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의 장에서 오로지 화폐(돈)에 관해서만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사회라는 공간 유지에 필수적인 인간관계의 맥락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했다고 주장한다. 에나프의 주장을 바탕으로 그의 연구가 바울의 에클레시아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자.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갈 때에 인간이 된다. 즉,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공동체의 다른 말은 사회이다. 인간은 여러 공동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타인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도대체 무엇을 바탕으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설정할까? 어떻게 타인을 믿고 신용하며 관계를 유지할까? 사회와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인간관계 속에서 일정한 유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화폐가 나타나기 전에 그 유대를 확립해준 것은 상호적 되갚음이었다. 즉, 마치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증여하고 돌려받아야 할 무엇인가를 부드럽게 강요함으로써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시작에는 선물의 증여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첫 선물은 언제나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으로 이해되었다. 즉,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유대감이 필요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신이 그들에게 베풀어준 은혜 또는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시작에는 아브라함이 있었고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증여가 있었다. 가나안이라는 땅을 주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씨족 중심 또는 가족 중심의 촌락이 발전하여 고대 도시가 성립되기 시작하자 물물교환이 생활에 필요한 중요 활동으로 등장했다. 직업이 분화되고 여러 생산물이 발명되었다. 물물교환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속화하기 위해 화폐가 등장했고, 이내 화폐는 도시 경제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화폐, 즉 돈의 사용이 안정되려면 화폐를 보증한 시스템과 법이 필요했고, 국가는 이런 도시 경제의 발달에 의해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법과 질서는 화폐의 사용을 가능케 했고, 국가 간의 거래 또한 가능케 함으로 무역과 외교가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선물과 증여를 통한 인간관계는 경제활동에서 점점 사라지게 된다. 증여와 서로에 대한 믿음은 철학과 윤리의 영역으로 밀려난 것이다. 신의 선물과 은총은 이제 그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도리나 선행으로 제한된다. 이스라엘을 예로 들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집트 제국을 탈출한 출애굽 공동체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가르침)을 전달받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이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 율법은 잊히거나 성전에서 행하는 제사의식으로 제한된 것과 비슷하다.

결국 이스라엘은 정의가 없는 나라, 법과 질서가 갇힌 자와 억눌린 자를 위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입김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되었다. 돈의 정의에는 사랑과 은혜가 없다. 계산과 효율이 있을 뿐이다. 법과 질서는 그것을 위해 더욱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스라엘에 나타난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외쳤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고 결국 더 크고 강대한 제국에 식민지가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바울의 시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화폐와 선물이라는 역사적 관점에 보면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 화폐와 법의 발달로 인해 원래 인간 사회 또는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유지시켰던 은혜와 선물은 갈 곳을 잃고 철학이나 윤리, 또는 종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경제적 정의나 법의 정의가 아닌 은혜와 사랑의 정의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이에 강렬하게 응답했던 이가 예수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를 외치며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강조하고, 종교적 법이 인간의 행복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북돋아야 함을 말한 예수의 가르침은 당시 로마의 정치와 유대의 성전 종교 사이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주었다. 그 횃불과도 같은 소명이 이제는 사도가 된 예수의 제자들과 바울에게 주어졌을 때,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신의 선물과 은총이 중심이 된 공동체를 로마의 도시 한복판에 다시 세울 수 있을까’였다. 이제 다시 빌립보서로 돌아가자.

가장 가난한 빌립보 공동체의 나눔 실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고후 1:8) 리처드 호슬리 미국 매사추세츠대 종교학 교수는 이 구절을 빌립보서와 연결하여 바울이 54-55년에 에베소에서 감옥에 갇힌 일을 회상하는 것이라 말한다(181). 실제로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빌 1:13) 알려졌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19:23-27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당시 데메드리오라는 은으로 신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그가 자신들의 신을 모독했다고 고발하는 내용이 나온다. 54년 가을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독살되고 폭군 네로가 왕좌를 차지하던 시기였다. 로마의 영향력은 점점 기독교 공동체의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로마에 가까운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공동체에서는 이미 박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데살로니가와 빌립보보다 로마와는 더 떨어진 소아시아의 에베소까지 박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안디옥에서 베드로와 헤어진 지(약 48-49년) 불과 5년 만에 바울의 선교는 에베소의 감옥에서 끝날지도 모를 운명에 놓였다.

자신이 꿈꾸던 에클레시아의 소망이 이렇듯 5-6년 여의 짧은 사역으로 사라지려 할 때, 바울을 참으로 기쁘게 한 일이 있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지금 다시 일어난 것을 보고,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빌 4:10) 바로 빌립보의 에클레시아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온 일이었다. 신약학자들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공동체 가운데 가장 가난한 공동체였다고 본다(박영호, 387). 이 빌립보 공동체는 바울이 ‘감독들’과 ‘집사들’이라고 부르는 평신도 지도자들로 조직된 잘 짜여진 에클레시아였다(박영호, 388). 그들은 데살로니가를 비롯한 바울의 마케도니아 선교 시에 계속된 헌금으로 바울을 도왔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헌금은 원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공동체의 헌금이기보다는 몇몇 개인들의 헌금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기뻐한 것은 빌립보의 에클레시아가 극한 가난 속에서도 자신들의 소유를 조건 없이 내어주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말하는 헌금과는 다르다. 지금 바울은 로마에 의해 갇힌 자요, 고통 받는 자요, 희생당하는 자이다. 그 자신의 표현으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하는 사람이다(빌 3:12). 로마에 의해 희생당한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부여한 소명에 응답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헌금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인 것이다(빌 4:18). 즉, 이야말로 바울 자신이 일구어 놓은 에클레시아의 결실이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에클레시아는 전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 모두를 에클레시아로 명명하면서 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고 새로운 하나님의 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언약의 표지인 율법의 할례와 정결음식법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리라는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율법의 행위 안으로 흡수하려 했다. 그것은 바울이 보기에 정치적 혁명이나 제국의 통치로부터의 자유로 연결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율법의 의와 유대 민족을 중심으로 한 사람이 세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바울의 대안은 신의 은혜를 돈과 법으로 만드는 제국의 경제 질서에 대한 대항이었고, 그 답은 나눔이었다. 로마제국의 기반이 된 권력과 착취의 경제 및 소유를 중심으로 한 욕망의 도시를 무너뜨리기 위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을 믿으며 자신의 것을 나누고 희생하여 형제자매에게 나누어주라고 당부한다. 빌립보의 에클레시아는 그것을 실천함으로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고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정치범으로 구속된 바울을 옥바라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영광에 참여했다. 에나프의 연구에 따르자면, 급속히 발달하는 로마의 경제체제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화폐 교환이 아닌 내어줌과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경제를 통해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공동체로서의 에클레시아를 형성한 것이었다.

참고자료
1. Horsley, Richard A, and Neil Asher Siberman, The Message and the Kingdom: How Jesus and Paul ignited a Revolution and Transformed the Ancient World. Menneapolis: Fortress, 2002.
2. 박영호, 《에클레시아》,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
3. 마르셀 에나프, 김혁 역, 《진리의 가격》, 서울: 눌민, 2018.

 


한수현
감리교신학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Th.M.), 시카고 게렛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M.Div)한 뒤, 시카고신학교에서 바울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바울 서신, 복음서, 유대 묵시문학이며, 박사 논문은 고린도전서 15장의 ‘죽은 자의 부활’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 짓는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강사로 바울 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교회와 사회를 바울 서신과 바울 신학에 비추어 살펴보는 여러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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