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호 제국과 하나님 나라] 빌립보서 다시 읽기 3

빌립보에서 시작된 ‘바울의 실험’
바울의 에클레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 이를 대개 ‘역사적 재구성’이라 하는데, 글을 읽고 해석하는 이들이 자주 시도하는 일이다. ‘역사적 재구성’이란 어떤 글을 쓴 이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경제적 환경과 주변 상황, 가족관계 등을 고찰하여 글쓴이가 살았던 삶을 재구성하는 일을 뜻한다. 개인의 상황을 좀 더 확대해 이해하면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역사적 상황, 사회적 정황이 된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같은 사람이 쓴 글이라 해도 박근혜 정부 시기를 살면서 쓴 글과 문재인 정부 시기를 살면서 쓴 글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인권, 평화 등을 주제로 하는 경우, 시대적 환경의 변화는 작가의 주제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바울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바울의 시대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2천 년이란 시간을 넘어서 바울 시대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흔히 그 작업을 생략하고 바울을 만나기 위해 성서를 펼쳐들고는 사도행전의 이른바 ‘바울의 회심 사건’이라 불리는 본문으로부터 그를 이해하려 한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쓴 글도 아니고 그 저자조차도 바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생각한 교회사의 한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는 예수의 복음이 땅끝으로 전해졌음을 알리는 데 있다. 아울러 그것이 예수가 이 땅에 온 목적임을 독자들이 믿기 바라는 마음으로 사도행전을 저술했다. 즉, 메시아의 오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복음전도라고 설득하고자 한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 저자의 의도를 충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등장하게 되었다.

소위 ‘회심 사건’으로부터 바울을 이해하고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그의 일대기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교회라는 조직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회심 사건에서 시작된 바울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모태신앙인들은 자신의 부모나 구한말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탕자처럼 살면서 하나님을 미워하다가 특별한 체험을 하고 회심하여 목사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현대의 교회에도 넘쳐난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바울이 세운 교회는 도시의 어느 골목에 한 사역자가 믿음으로 개척한 개척교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회심한 사람들이 모이고 자신들이 잘못된 신앙이나 종교를 믿다가 지은 죄들을 고백하는 사람이 모인다. 즉,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바울이 세운 에클레시아와 현재의 교회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흥미롭게도 사도행전의 소위 ‘회심 사건’을 바울 이해에서 어디쯤 놓을 것이냐에 따라 바울신학자들의 시각도 극명하게 대조된다.

어떤 이들은 그 사건에 역사성을 부여하여 바울의 삶과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건이라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단지 바울이 이방인들에 대한 소명을 확인했다는 정도의 의미만 부여한다. 필자는 후자 쪽인데, 바울이 이미 스스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변함없이 주장하고 있고,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랑스러워했으며, 로마서 11장에서는 유대인들 또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들어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바울의 생애는 ‘회심 사건’을 기점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궤를 가진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로 번역되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이해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49-50년에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이 세운 최초의 에클레시아가 이전의 기독교 공동체와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상상해보았다. 물론 이는 필자의 순수한 상상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기본으로 한 학문적 가능성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로마식 도시화가 진행되는 지역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바울의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제국’에 대한 유대 공동체의 희망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 이전의 기독교 공동체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건설되었다. 아마도 당시 선교는 먼저 각 도시의 시나고그(회당)를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은 바울 시대에는 유대의 종교 중심지인 성전의 예식을 존중하면서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성전 파괴 이후의 유대주의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을 유대교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하기 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디옥의 유대인들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지난 글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중요한 율법 중 하나인 음식법을 존중하기 위해 식탁을 구분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여전히 이전의 유대교적 신앙 형태를 크게 변화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세례나 주의 만찬과 같은 모임을 위한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나 그런 모임들은 당시 사회에 흔하게 있었던 모임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도행전에서도 확인되듯이, 바울 이전의 에클레시아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나하나의 지역적 공동체를 의미하기보다는 전체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였다(박영호). 예루살렘은 그런 전체 에클레시아의 중심이었고 당연히 사도적 권위와 질서가 중시되었다. 게다가 아마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에클레시아는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이자 다윗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를 서술하는 사도행전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행 1:6, 새번역) 이에 예수는 대답한다.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1:7) 그리고 뒤를 이은 명령이 바로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다. 즉, 사도행전이 쓰여진 시대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아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 시대의 기독교 공동체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며 그 회복은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큰 관심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겐 여전히 히브리 성서의 율법의 의미와 약속의 성취가 중대한 것이었다. 바울은 처음에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회복에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바울은 이 공동체가 가진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 위험은 당장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으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 안에 지속되는 유대적 우월주의에 숨어 있는 새로운 제국에 대한 희망이 그것이었다.

예수는 새로운 제국의 왕인가? 로마제국을 꺾고 이스라엘을 새로운 강대국으로 세워주실 것인가? 또는 예수의 ‘하늘의 제국(천국)’은 새로운 제국인가? 그래서 그를 따르는 자들은 구원하고 그렇지 않은 로마의 시민들에게는 심판을 내릴 것인가?

보통 위와 같은 논의 또는 논쟁은 끝도 없고 대안도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 여성주의(feminism)는 그런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도록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데 관심을 가진다. 이 논의는 자연스럽게 여성이 구조적으로 당하는 불이익을 인정하고 우선은 여성에게 좀 더 많은 기회와 배려를 마련하는 정책으로 나타난다. 이때 이를 대변하기 위해 언급되는 ‘여성의 독립성과 우수성에 대한 재발견’은 주변 사람들에게 여성우월주의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때 누군가는 질문한다. ‘그럼 여성이 중심이 된 사회는 바람직한가? 이때까지 남성들이 사회에서 좀 더 많은 기회와 권리를 누렸다고 하여 여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여성에게 우선권을 준다면, 그것은 여성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지 않나?’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은 차별의 대상이다. 차별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월주의가 아니다. 차별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만큼 허망한 논의도 드물다. 그렇다면 피식민인의 삶을 살면서 로마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 예수가 왕이 된 새 이스라엘을 꿈꾸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그것이 잘못이라면 도대체 바울에게는 무슨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인가?

바울은 철학적 논쟁이나 신앙적 설교의 차원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운 공동체 에클레시아를 통하여 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의 대안을 살펴보려면 종교와 신학의 눈이 아니라 바울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 전체를 상상하는 눈이 필요하다.

화폐·법질서의 로마제국 vs. 은혜·선물의 공동체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르셀 에나프(Marcel Henaff)는 《진리의 가격》(눌민)에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근대를 꿰뚫는 돈과 진리에 관해 논한다. 에나프는 선물 또는 은혜라는 고대의 개념이 화폐의 역사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의 연구를 논하면서 그들이 은혜라는 단어가 가진 무조건적 내어줌을 도덕이나 종교적인 영역에 한정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의 장에서 오로지 화폐(돈)에 관해서만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사회라는 공간 유지에 필수적인 인간관계의 맥락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했다고 주장한다. 에나프의 주장을 바탕으로 그의 연구가 바울의 에클레시아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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