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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그 돼지들이 꿈꾸던 세상은 어찌 되었나
[349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349호] 2019년 11월 29일 (금) 11:11:28 최은 goscon@goscon.co.kr
   
▲ <동물농장>(1999)

베이브부터 옥자까지, 남다른 돼지 영웅들
돼지가 주인공인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남다른 감수성을 지녔던 <꼬마돼지 베이브>(1995)와 슈퍼 돼지 <옥자>(2017)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납니다. 다코타 패닝이 주연한 <샬롯의 거미줄> (2006)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1992)도 있지요. 대체로 이들은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게 똑똑하고 교감이 가능해서, 인간의 친구가 된 돼지들입니다.

다른 돼지들이 “돼지들은 빨리 자라 뒤룩뒤룩 해질수록 빨리 천국에 간다”는 말을 믿고 이별을 슬퍼하지조차 않을 때, 아기 베이브는 사라진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어요. <샬롯의 거미줄>의 윌버는 너무 작게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주인집 딸 펀(다코타 패닝) 덕에 살아나 농장의 슈퍼스타가 된 경우입니다. 윌버는 늙은 거미 샬롯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돼지였죠. 옥자는 산골소녀 미자(안서현)의 유일한 친구였고, 듬직한 보디가드였습니다.

이들은 종종 농장 동물들의 부러움과 지지를 받으며 리더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가축 품평회에서 우승이나 해야 겨우 통돼지 바비큐나 햄이 되는 신세를 면할 수 있는 돼지들이기도 했지요. 따지고 보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에서 정신적인 지주였던 돼지 메이저 영감이 현명한 교훈과 이론을 남기고 ‘늙고 병들어’ 죽을 수 있었던 것도 과거에 가축 품평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던 실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도 죽어서는 도축을 면하지 못했지만요.

존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동물농장>(1999)은 이 메이저 영감이 농장주의 총에 희생된 것으로 그렸는데요, 동물들의 흥분과 혁명을 자극하는 극적인 장치로 그의 죽음을 사용한 것입니다. <동물농장>은 이 똑똑한 돼지들이 힘과 지략을 다른 동물들을 억압하고 사람처럼 되는 일에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돼지 영웅들에게 흔한 인간 친구가 단 한 사람도 없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원작자 조지 오웰이 바라본 세계는 동심조차도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조지 오웰은 한 꼬마가 시골마을에서 달구지 말을 몰고 가는 모습을 보고 《동물농장》을 생각해냈다고 해요. 골목길에서 굽이를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는 꼬마 사람을 보며 만약 저런 동물들이 자신의 힘을 인식한다면 인간들이 저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이지요. 전쟁을 겪고 난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돼지가 되어버린 <붉은 돼지>의 조종사 ‘마르코’는 그래서 차라리 정직한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물농장> 돼지들의 ‘7계명’과 우리의 ‘10계명’
영화 <동물농장>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영화는 비바람이 거센 밤, 늙은 암캐 ‘제시’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제시는 존스 씨가 소유한 ‘매너 농장’의 양치기 개입니다. 새로운 지도자 돼지 ‘나폴레옹’에게 갓 태어난 강아지들을 모두 빼앗겨 자식들이 그의 ‘비밀경찰’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죠. 제시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과거 농장에서 있었던 혁명과 몰락의 과정을 회상합니다.

어느 날 매너 농장의 돼지들은 주정뱅이 인간 존스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킵니다. 메이저 영감이 동물회합을 열어 자신의 오랜 꿈을 전하고 혁명의 노래를 가르치던 날이었어요. 동물들이 모두 평등한 세상, 그것이 바로 메이저의 꿈이었습니다. 개중 똑똑한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그 꿈을 이어받고 스퀼러가 그들의 대변인이 됩니다. 존스를 몰아낸 후 스노볼은 모두가 볼 수 있는 자리에 ‘동물주의(애니멀리즘) 원칙’ 일곱 가지를 써 놓았죠.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같은 것들이었어요. 이 와중에 양들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고 합창을 해대고, 힘이 좋은 말 ‘복서’는 다음 두 가지 좌우명을 붙들고 평생을 노동에 바칩니다. “더 열심히 일하자!”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

나폴레옹이 경찰견들을 동원하고 모함해서 스노볼을 쫓아낸 후, 일곱 가지 원칙들은 한 구절씩 차례로 수정되어갑니다. 나폴레옹이 두 발로 걷고 위스키에 취해 인간의 옷을 차려입고 나타날 즈음, 양들은 이제 이렇게 외치고 있었어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조지 오웰은 그 옛날에 이미 역사를 지우고 언어를 지배하는 세계의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거지요. 시스템 농장 같은 오늘날의 교회 조직이 그 ‘똑똑함’을 동원해서 자주 왜곡하는 복음의 원칙과 변질된 ‘십계명’을 떠올린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구미에 맞게 미묘하게 수정된 언어들을 찾아내, “정말 그런가?” 거듭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익히 알려져 있듯이, 《동물농장》은 우화로 쓰인 작품입니다. 역사적 맥락(context, 상황)이 있고, 알레고리 기법이 사용되었죠.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최고의 목표였던 1940년대,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은 소련의 스탈린과도 손을 잡기로 합니다. 1943년 11월의 테헤란 회담이 가시적인 사례였어요. 영국인 조지 오웰은 종전 전에 쓰여 1945년에 발간된 《동물농장》에서 이 상황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돼지들은 러시아의 관료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일으킨 볼셰비키 지식인들을 의미합니다. 나폴레옹은 스탈린, 스노볼은 트로츠키였겠지요. 스퀼러는 선전대를 이끄는 지식인과 언론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영적인 지도자 메이저 영감은 혁명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마르크스입니다. 직설 대신 알레고리 기법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영국의 출판사 네 곳에서 즉각 거절당했다고 해요. 연합국의 일원이 된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으로 봐서는 놀랄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1999년에 제작된 영화 <동물농장>은 그래서 좀 다른 결말이어야 했겠지요. 소비에트 연방국들이 개별 국가들로 독립하고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어가는 것을 목격한, 세기말의 영화니까요. 오프닝의 폭풍과 세찬 빗줄기는 돼지들이 지배하는 농장을 떠나 망명했던 동물들이 귀환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되는 시기, 곧 21세기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1948년에 쓴 <작가와 리바이어던>이라는 에세이에서 조지 오웰은 말했어요. “지금은 정치적인 시대다. 우리는 전쟁, 파시즘, 강제수용소, 고무경찰봉, 원자폭탄 등을 매일 생각하며, 이런 주제를 공공연하게 지목하며 언급하지 않을 때조차 우리가 쓰는 글의 주제가 상당 부분 이와 관련을 지닌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타고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가라앉고 있는 배로 향할 것이다.”

2019년의 끝에서, 영원한 ‘복음’과 오늘의 ‘상황’을 생각하며 질문을 던져봅니다.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온통 우리의 생각과 말과 글을 사로잡는 ‘가라앉는 배’가 혹시 있을까요? 그렇다면, 자, 이제 그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더 늦기 전에 말이지요. 혹시 돼지 주인공이 필요하시다면, ‘실버silver’라는 이름을 빌려드립니다.

■ ‘최은의 시네마플러스’는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장기 연재로 지면을 빛내주신 필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영화이론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CBS TV 아카데미 ‘숲’에서 강의했다. 영화평론가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공저인 《영화와 사회》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가 있다.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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