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호 미디어 솎아보기]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지나간다. 전쟁이 일어난 해를 70번이나 기념했는데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평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의 바람과 노력이 하늘에 사무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행동이 평화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쯤 되면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반성하는 게 상책이다. 현재는 과거가 차곡차곡 쌓여 온 결과이고, 내일은 결국 오늘이 담아내는 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전하고 평화를 만드는 걸 본분으로 삼는 교회는 70주년을 맞는 6.25 기념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여러 행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다. 몇몇 대형교회가 이 행사를 십수 년 전부터 개최해오고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국가보훈처 같은 데서나 해야 할 일을 왜 교회가 나서서 하는 것일까?

교회가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개최하는 이유

먼저 새에덴교회. 6.25 70주년 하루 전날, 미국, 캐나다, 태국, 필리핀 등 6.25 참전국 용사 100명과 가족 50명 등 150여 명을 줌(ZOOM)으로 연결해 영상 행사를 개최했다. 원래는 70주년을 맞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퇴역 항공모함 ‘미드웨이’ 비행갑판에 500여 명의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초청하고, 90살 전후 노병 10명과 실종자·전사자 가족 20명을 한국으로 초청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행사로 변경됐다. 영상기술은 ‘미스터 트롯’ 팀이 진행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축사를 보냈다고 하니 한 교회의 행사치고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KTV국민방송] (풀영상) 6.25전쟁 제70주년 행사 '영웅에게'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평화 통해 남북 상생의 길 찾을 것" 화면 갈무리
[KTV국민방송] (풀영상) 6.25전쟁 제70주년 행사 '영웅에게'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평화 통해 남북 상생의 길 찾을 것" 화면 갈무리

그래서인지 지금도 포털에서 ‘새에덴교회 참전용사’를 검색하면 새에덴교회의 6.25 70주년 행사 기사 70여 개가 뜨는데 대부분은 교계 언론이 아닌 일반 언론 기사다. 개 교회 행사에 언제 이렇게 일반 언론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나 싶을 정도다. 행사 1주일 전 새에덴교회는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대상은 교계 언론이 아닌 일반 언론이었다. 이 자리에서 소강석 목사는 해외의 6.25 참전용사에 대해 “6월만 되면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존재”라고 고백했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방 땅에 와 청춘의 피와 땀, 눈물을 바쳐 희생한 참전용사들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는 얘기다.

한두 해도 아니고 14년째 거액을 들여서 정성껏 행사를 진행하는 걸 보면 소 목사는 분명 진심으로 외국 참전용사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다. 그가 외국인 6.25 참전용사 행사를 계획하게 된 건 2006년 백악관 신우회 모임에서 예배 설교가 끝나고 참석자들과 대화하면서다. 당시 상황을 소 목사는 2010년 8월호 〈월간 조선〉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설교가 끝나자 참석자들이 ‘왜 한국은 미국을 싫어하나, 예전에 도와줬는데 성조기를 찢고 태우는 이유가 뭐냐, 왜 북한과 그렇게 가깝나’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미국에 대해 잠깐 오해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의 전체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그 자리에 참전용사가 한 분 계셨는데 매우 섭섭해하시더군요.”

새에덴교회의 외국인 참전용사 초청행사엔 지난해까지 8개국 4,000여 명이 참석했다. 2009년, 2011년, 2014년, 20017년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시카고, 휴스턴 등의 참전용사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소 목사는 대북 지원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참전용사 초청과 대북 지원은 상충할 텐데 어떻게 병행이 가능할까. 〈한국일보〉는 소 목사가 기자간담회에서 전한 방북 당시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을 겁니다. 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평양에 가서 강영섭 당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을 만났어요. 대뜸 그러더군요. ‘우리하고 싸우자는 겁니까. 참전용사를 데려다가 뭐 하는 겁니까.’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아픔과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민족의 역사를 기억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요.”

[새에덴교회]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On-Line 보은행사(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화면 갈무리.
[새에덴교회]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On-Line 보은행사(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화면 갈무리.

새에덴교회가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온라인으로 벌이던 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오프라인으로 ‘참전용사 초청 기념 감사예배’를 개최했다. 이날 예배엔 74명의 6.25 참전용사들이 참석했다. 이들에겐 감사패와 격려금이 전달됐다. 이 행사를 2012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총 407명의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19세에 6.25 전투에 참전했던 최우병(90)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가 이런 소감을 말했다. “요즘 세대는 전쟁의 아픔을 잘 모른다.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지 바로 알아야 한다. 힘겹게 찾은 자유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모두 힘써야 한다.”

이 얘기를 젊은 층 앞에서 했다면 ‘꼰대’라는 말을 듣기 딱 좋았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전쟁의 아픔을 모르는 건 당연한 거고,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나라를 잘 지킬 수 있는지는, 비록 온몸으로 전쟁을 뚫고 온 세대만큼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눈과 방식으로 나라를 생각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는 젊은 세대들이 누구보다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떠나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전장에 내던졌던 그 헌신만큼은 후손들이 두고두고 기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 자리에서 이영훈 담임목사가 뼈 있는 말을 했다. 6.25 참전용사들 앞에서 후손으로서 이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길, 그것은 전쟁 없는 평화통일이라고 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들에 대한 보답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전의 대형교회인 새로남교회에서도 ‘6.25 남침 한국전쟁 70주년’ 행사가 6월 20일에 열렸다. 이 자리엔 6.25 참전유공자회 대전광역시 서구지회 소속 참전용사 75명이 참석했다. 행사 이름에 ‘남침’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에서부터 의도가 분명히 읽힌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6.25가 북한의 침략에 의한 것이고 이걸 잘 기억해야 한다는 것. 참석자들의 반응을 전한 〈국민일보〉 기사도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역사 없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지난날 나라를 위해 노병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기록된 증언집을 통해 후대들이 다시는 전쟁의 비극을 초래하지 않고 안보의식을 갖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양철순 6.25 참전유공자회 대전광역시지부장)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통해 평화를 위한 약속을 깨뜨리고 한반도 평화를 꿈꿔온 참전용사들의 기대마저 무너뜨렸다.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약속만큼은 지켜나갈 것이다.”(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

이들 세 교회의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내용이나 결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개최 이유는 한 가지인 것 같다. 과거의 역사, 지난날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긴장의 DMZ를 평화로 수놓은 기장의 평화대회

새로남교회에서 ‘6.25 남침 한국전쟁 70주년’ 행사가 열리던 6월 20일,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에서는 6.25 70주년을 맞아 한반도 치유와 화해를 위한 평화대회가 열렸다. 대표적인 진보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주최했다.

6월 20일은 무척 더웠다. 4일 전 북한의 기습적인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잇따른 군사적 위협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불안의 한가운데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DMZ 지역은 최근 수년간의 사건들이 말해주듯 언제든 남북 간 국지적인 대결이 촉발될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300여 명의 기독인들이 ‘평화’를 외친 것이다.

평화대회는 참석자들이 평화의 상징인 파란 우산을 쓰고 걸으며 전쟁 발발 70년이 흐르도록 참혹한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부족함을 반성했고, 백마고지에서 희생되어 갔던 남과 북의 젊은 청년들을 추모했으며,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했고, 평화를 위한 다짐을 선포했다. 평화대회 선언문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며, 남과 북이 하루빨리 조건 없는 대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CBS 뉴스] 기장총회,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 없어야" 화면 갈무리
[CBS 뉴스] 기장총회,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 없어야" 화면 갈무리

육순종 기장 총회장은 “최근 한반도는 화해와 평화의 절체절명의 위기다. 우리는 70년 전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돌아갈 수 없다. 평화는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온 힘을 다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라고 매달려야 한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평화대회를 보도한 〈CBS〉는 “기장총회가 코로나19 장기화에도 강원도 철원에서 집회를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고, 이럴 때일수록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언론은 기장의 이번 평화대회를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포털에서 검색해봐야 고작 3-4개 정도의 관련 기사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교계 언론이 전부다. 남북 긴장의 정점에서 남북 대결의 상징인 DMZ 한복판에서 평화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언론이 외면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기장의 영향력이 쇠퇴했다는 것, 개 교회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새에덴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새로남교회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관련 기사를 세기가 힘들 정도로 쏟아진다), 언론이 평화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많다는 것 등이다. 특히 일반 언론에서 교회 기사를 쓰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뉴스거리’였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돈이 필요한 언론과 홍보를 통해 세 확장을 원했던 교회의 욕구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비판하고 기장의 평화대회를 칭찬하기 위한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기장의 평화대회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과거의 아픔을 잊은 채 평화로만 나아가자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남북 긴장 국면에서 DMZ 내 행사를 개최한 것은 안전불감증에다 현실을 외면한 것이란 비판도 가능하다.

과거를, 과거의 아픔과 영광을 잘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매몰돼 있어서는 역시 미래가 없다는 교훈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경험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그것이 미래 세대의 발목 잡기라면 그게 바로 ‘꼰대’인 것이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평화는 과거의 흔적 지우기가 아니다. 지난날의 아픔이 아물지 않고 여전히 생채기로 남아 있는데 싹 덮고 미래로 평화로 나아가자는 것, 그것은 폭력이다. 평화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아픔을 반드시 짚고 딛고 건너야만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장밋빛 미래가 아닌 전쟁의 상흔, 분단의 상처를 보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본격화되더라도 이런 과거의 아픔이 갈등의 화근이 되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역사를 놓고, 전쟁의 원인과 정치 체제를 놓고 남북의 해석과 입장 차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번 6.25 70주년에 언론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과거/미래, 전쟁/평화 양자택일의 극단은 아니었는지 모두 함께 돌아보면 좋겠다. 71주년 행사는 과거와 미래, 전쟁과 평화, 나아가 보수와 진보가 같이 손잡으면 좋겠다. 

 

6.25 70주년 주요 행사들

 

· 한장총, 한국전쟁 70주년 성명 “6.25의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 한교총, 6.25 70주년 성명 “좁고 험해도 남북 화해와 공존의 길 가야”

· 평통연대, 한국전쟁 70년과 6.15 20주년을 맞이하는 성명서 발표

· 한교총, 6.25 한국전쟁과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 예배

· 한국기독교장로회, 한반도 치유와 화해를 위한 평화대회(강원도 철원)

· NCCK, 한국전쟁 70년 한국기독교회 호소문 발표

· NCCK-WCC, 한국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정착 집중 기도주간(3.1-8.15)

· 새에덴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새로남교회,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

· 한국교회 복음통일기도성회,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개최

· 한국종교인평화회의-한국YMCA전국연맹 등 170여 개 단체,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준비위원회’ 발족

· 한국교회남북교류협력단, ‘전쟁 없는 한반도, 남북 상생 평화의 길’ 호소문 발표

· 나라와 민족 위한 ‘한국교회 구국기도대성회’, 25-27일 영락교회서 개최

· 한국전쟁 70년 연합예배 추진위원회, 철원제일교회서 제1회 대한민국 강원도조찬기도회 개최

 

김성원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뉴미디어학(석사)을 공부했다. CCC 간사, 〈국민일보〉 기자,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상임이사로 일했다. 지금은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유코리아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다. 통일은 장밋빛 환상이 아닌 분단의 아픔과 죄악을 회개하고 고치는 데서부터, 나 자신과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썼고, 《독일 통일, 자유와 화합의 기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