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호 커버스토리]
들어가는 말
서른 해 전(1991년)에 창간되어 간난신고를 겪으며 오늘까지 살아남은 〈복음과상황〉은, 특정 진영 잡지로 축소되지 않으려 분투하면서 다양하고 풍성한 관점을 가진 기독청년들의 집단지성이 서로를 벼리는 공론장으로 존재해왔다. 창간 무렵 〈복음과상황〉은 ‘사회적 관심’이 심히 결여돼 있던 한국의 주류 보수주의 교회에서 움튼 작은 싹이었고 연한 가지였다.
당시의 한국 주류 교회는 성(聖)과 속(俗), 사제와 평신도, 사후에 가게 될 천국〔彼岸〕과 죄와 환난 고통이 가득 찬 이 세상〔此岸〕, 교회와 사회를 엄격하게 나누는 이원론의 교회였다. 주류 교회는 모든 기독신앙은 교회 활동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신자들의 일터를 포함하여 이 세상은 침몰 중인 타이타닉으로 간주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을 수선하려 하거나 새로운 배를 건조하려는 모든 시도는 세속주의나 불신앙으로 치부되었다. 간단히 말해 역사포기적이고 지구탈출적인 기독교였고, 교회가 완수해야 할 가장 긴급한 과제는 ‘개인전도’에 있다고 믿었다. 이는 2천년 정통 기독교리가 이단으로 간주할 정도로 사회도피적이고 축소주의적 기독교에 가깝다. 당연하게도 한국의 주류 교회는 예수님을 주(主)라고 고백하고 사랑한다고 노래하면서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간과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신앙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세상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세상을 감히 변화시키려는 기개를 갖지 못한 채 예배당 안으로 움츠려 들었다. 세상포기적이고 지구탈출적인 기독교 신앙이 이런 자폐적인 심리에는 더욱 잘 어울렸다. 둘째, 사회를 품고 변화시키려는 기개를 가진 목회자들이 거의 없었던 데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려는 평신도들의 등장도 더뎠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목사나 사제의 목양 대상이 되는 ‘양’이라는 위계적 개념이 교회에서 위세를 떨쳤으며, 목사의 강단설교와 예배 외에는 달리 기독교 신앙을 공공연히 표현할 계기가 없었다.
〈복음과상황〉은 이런 미성숙하고 병든 상황을 돌파하고 극복하려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창발한 사회선교적인 몸짓의 산물이었다. 이 잡지는 복음주의 교회의 ‘사회적 대전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복음과상황〉의 창간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서는 이 세상과 사회를 철저하게 포기하고 세상도피적인 이원론 영성으로 치우쳤던 한국교회의 세상철수적 풍토를 아주 간략하게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복음과상황〉 창간의 의의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사회적으로 실종된” 교회의 민낯을 살펴볼 때 잘 드러난다.
축소주의·도피주의에 함몰된 주류 한국교회
아주 초창기부터 한국교회는 덧없는 역사적 상황들과 사태에 휩쓸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 즉 소위 영혼구원 사역에 전심을 쏟았다. 한국교회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보다는 ‘구원’ 혹은 ‘영생’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물론 성경이 본래 가르치는 하나님의 구원이나 영생은, 세상포기적인 교회가 신봉하는 그런 구원·영생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영혼구원 교회가 그토록 애독하는 요한복음도 사후의 내세에 맛보는 천당 생활이 영생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결속된, 영원히 지속가능한 언약공동체 생활을 영생이라고 가르친다. 구원을 죄 많은 세상으로부터의 탈출로 가르치는 한국교회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이 거룩함의 상실을 초래하고 세속화의 위험에 노출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이런 자폐적인 교회들은 오로지 오도된 영생과 천국, 교회성장, 예배당 건축 등의 교회 내적 과업에 몰입한다.
돌이켜 보면 세계변혁적 선교에 대한 이런 위축된 입장이 한국교회 초창기 역사의 빛 아래서 볼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아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어린 한국교회가 마주한 세상은 실로 압도적이었기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기개는 상상할 수 없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기독청년 30여 명이 노예무역제도와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전방위적 사회선교를 전개하던 그런 기개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한국교회가 복음을 받아 기독교 신앙에 입문했던 시점은 조선말기 봉건체제의 악습이 지배하고 곧이어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가 위세를 떨쳤던 시대였기에 ‘사회’나 ‘세상’에서는 도무지 희망의 단초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일제 식민지배에 순응하며 조용히 교회만 지키고 부흥시키면 그만이라는 소극적인 자세가 우세하였다. 그래서 조선말기와 일제치하의 조선기독교회부터 한국전쟁과 4.19 혁명 이후 주류 한국교회까지 줄곧 ‘죄 많은 이 세상에서 개인을 구출해내는 개인전도’에 투신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교회 밖의 사회적 대변동을 통해서 이런 자폐적 주류 한국교회를 조금씩 깨우기 시작하셨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72년 박정희 유신체제부터 1987년 6월 대항쟁에 이르기까지 교회 밖의 사회민주화 투쟁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낳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이었다. 또한 이 기간은 권위주의 군부독재체제 아래 이뤄진 농촌 해체로 인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간 이촌향도민(離村向都民)이 저임금 도시노동자로 변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도시보다 농촌 인구가 더 많았으나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육성 및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으로 농촌을 떠난 이주민들은 저임금 공장노동자로 변신해 수출주도형 경제부흥을 주도했다. 이들은 불원간에 수도권 등 도시에 정착해 경제적 안정을 이룬 후 민주화 투쟁에 동력을 공급하는 배후기지로 기능했다. 전통적인 보수여당 텃밭이던 농촌이 약화되고 도시에 인구밀집이 일어나면서 도시민들의 민주화 의식이 양자도약을 이루었고 마침내 이들의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어 1980년대의 시민-학생 민주화 연대를 결성했다. 박정희 유신체제는 역설적으로 그 수혜자들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해체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도시로 이주한 이촌향도민들이 대거 교회로 몰려들어 교회의 교세가 팽창하던 시기이도 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 변화를 추동했던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부들에 대해 강한 정서적 유대를 느껴온 편이다. 그들은 ‘교회 예배당’에 몰려온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라고 믿고 ‘교회에서 이뤄진 일들’만이 하나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원론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초대교회가 그토록 맹렬하게 단죄했던 영지주의와 방불한 이원론 기독교를 수호하며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구분했다.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는 천사들의 문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암구호 같은 영적 지혜〔靈智〕를 비밀리에 받은 사람들이다. 지상에서 갖은 고초를 당해도 천국에서의 영생을 보장받은 사람들이다.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잘 순종하고 교회에 충성을 다하면 영생을 확실히 보장받는다.”
삶이 고단하거나 세상에서 받는 멸시와 천대가 많은 사람일수록 교회 안에서 바치는 충성과 열심은 눈물겨울 정도로 컸다. 이렇게 해서 몸집을 불린 교회가 오늘 엄청난 도시형 대형교회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암적 존재라고 비난받지만 도시 소재 대형교회들은 재정력, 부동산 소유, 교세, 정치적 영향력, 여론 형성력에서 ‘큰 교회’로 대접받으며 으스댄다. 그들은 대체로 ‘교회주의자’들로서 ‘교회에서 하는 일들’만을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믿는 자들이다. 이런 한국교회의 조상이 바로 일제의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는 중에도 조선총독부와 화합하며 살아남은 교회였다.
신사참배 결의를 ‘교회 수호’로 정당화해온 역사
중대형교회일수록 ‘교회’ 수호, ‘예배당 회집예배’ 수호에 전력투구한다. 그들은 은연중에 자신들이 일제의 기독교 말살과 공산주의 북한의 교회 말살에 맞섰던 영웅적 순교신앙의 후예라고 믿는다. 물론 이것은 부분적으로 착오이며 다른 면에서는 과장이다. 신사참배를 강요당하거나 신사참배 요구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던 ‘남은 자’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우상숭배 배척에는 실패하고, 교회재산과 직제, 인적 체제 수호에는 성공했다. 대한예수교장로교 총회는 신사참배를 국가의례로 받기로 하고 주기철 목사를 출교 제명했던 1938년 제27회 조선장로교회 총회 결정, 곧 신사참배 결의 결정을 총회 차원에서 통회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 적도 없고 주기철 목사를 복권시키지도 않았다. 신사참배에 협조하고 순응하면서 제도권 교회(교회 조직·건물·재산)를 수호했다고 자임하던 제27회 조선장로교 총회장 홍택기의 항변은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는 신사참배의 굴욕과 기독교 신앙의 배반자라는 낙인을 감수하며 교회를 지켰다.”
이런 홍택기의 논리가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한국교회는 아직도 총회 차원에서는 겨레의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 장기간의 민족분열의 죄책을 자신들에게 전가하고 떠안는 제사장적 중보기도조차 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교회 주류는 북한 멸절, 반북 적대와 혐오 정서를 확산하며 하급 정치투쟁의 선봉대 역할을 맡곤 했다. 최근 전광훈 일당이 주도하는 광화문 태극기 집회는 주류 한국교회에 남아있던 이 하급 정치투쟁 의식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계기였다. 주류 한국교회는 북한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남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려는 열심에서 한국의 주류 보수정치 세력과 견고한 동맹을 구축해 오랫동안 정치판의 이념전쟁 선봉대 역할을 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이산민들이 중심이 된 서울의 영향력 넘치는 대형교회들은 원수 사랑을 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나 모세와 예언자들이 외쳤던 공평과 정의의 복음보다 반북반공 친미노선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대표적 사례로, 월남이산민들이 주로 모인 영락교회 교인들 중 일부는 제주 4.3의 민간인 학살에 참여한 서북청년단원들로 둔갑해 이념전쟁의 광기를 드러냈다. 이런 한국 보수주의 교회의 원조격인 일제 조선총독부 체제 하의 주류 교회들은 조선총독부와 일제 경찰의 도움을 받아가며 창경원(일제가 창경궁을 벚꽃 만발한 동물원으로 개조한 시설) 앞에 100만 명 구령운동 부스를 설치해 놓고 개인전도에 힘을 쏟았다. 곽안련 선교사 등이 주도한 1909-1910년 백만인 구령운동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주류는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체현한 신자들의 공동체라기보다는 교회 조직, 재산, 부동산, 그리고 교리체계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위에서 일별해 보았듯이, 바로 이들이 한국교회사의 정통 주류세력인 것이다.
한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복음주의 기독교
특히 1970-1980년대 주류 한국교회는 대체로 역사적 전천년설 종말론을 내세우는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의 종말론적 개인구원 전도대회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런 신앙풍조 속에서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미국의 보수주의 장로교 전통에서 수입된 기독교가 한국의 주류교회로 발전되는 과정에는 1960년대부터 태동한 ‘복음주의’ 청년학생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다소 개방된 보수주의 교회들이 1900년대 초에 등장한 ‘근본주의 5대 강령’(성경 무오성·동정녀 탄생·육체의 부활·재림과 심판) 추종 교회들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복음주의 교회’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에 등장한 미국의 ‘근본주의’나 이렇게 등장한 ‘복음주의’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어쨌든 1960년대부터 CCC, IVF, UBF, YWAM, JOY, ESF 등 복음주의 청년대학생 선교단체들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청년들’을 구출해 내려고 애썼다.
이런 한국 복음주의 선교단체를 태동시킨 서구 교회들은 19-20세기의 서구 교회의 해외선교 집중 동원령과 20세기 초에 일어난 미국 근본주의교회 신조를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 다음과 같은 6가지 신앙 실천 강령을 만들었다. 1)성경의 무오성 확신, 2)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형벌대속론적 이해(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 3)개인전도의 우선성, 4)철저한 교회 중심, 5)성령의 중생과 교회 쇄신, 6)예수님의 재림을 촉진하는 만국복음전파.
한국에서도 이런 일련의 신조를 의식하는 보수주의 교회는 자신들을 근본주의 교회와 구별하여 복음주의 교회라고 불렀는데, 주로 수도권 중대형교회들이 스스로 복음주의라고 자임했다. 복음주의 교회는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하기에 성경을 아침마다 읽고 필사하는 큐티운동을 확산시켰고, 사영리나 전도폭발훈련을 통해 개인전도에 투신했다. 당연하게도 복음주의 교회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과 교세 확장, 성령에 의한 중생, 역사적 전천년설(혹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입각한 임박한 예수 재림을 바라며 해외선교 운동에 전력을 쏟았다.
이런 신조를 붙들던 한국교회는 근본주의든 복음주의든 상관없이, 4.19 민주화 의거부터 1988-1989년 노동자 대투쟁 시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교회 밖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격변과 진보 물결에 맞서 강력한 영지주의적 이원론 신념으로 맞섰다. 한국 주류 교회는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 3등 선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요나 같았다. 배가 전복되고 난파될 위기에 처했는데 깊은 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복음주의 안에는 신자들이 살아가는 동시대 사회를 기독교 신앙과 대의로 변화시키려 하는 사회선교적 관심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1970-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 내내 한국 주류 교회(근본주의나 복음주의 모두)는 군부독재 정권과 동행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에 한국교회의 소수파 진보 진영은 KNCC, EYC, 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 민중신학 운동 등을 통해 교회 밖의 사회적 진보운동과 민주화 충격을 창조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을 하나의 교회로 보려는 에큐메니컬 관심을 지나치게 앞세워 〈복음과상황〉 창간 참여자들에게 그리 큰 힘이 되지는 못했다.
사회적 응전에 나선 ‘개량형 복음주의자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밖의 사회변혁과 민주화투쟁의 물결에 응전한 소수의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원론적이고 세상에 대해 폐쇄적인 교회에서 이성과 학문의 중요성, 직업소명설, 만인제사장설 등을 말하며 조용히 균열을 내던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손봉호, 이만열, 김진홍, 홍정길, 이승장, 박철수 등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투쟁이 절정에 이르던 1987년에 ‘사회’를 품고 일반 사회가 제기하는 문제에 응답하는 기독교 전통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포괄적으로 운동권으로 불리던 민주화투쟁 주축세력은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사건으로 촉발된 대학생들의 유신반대 민청투쟁에서 생겨났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투쟁부터 계산하면 약 30여 년의 민주화운동은 1987년에 어느 정도 중간결산을 이뤄냈다. 군사독재정권을 연장하려는 전두환의 시도에 맞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이 성공하고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대규모 청년 시민들의 반정부투쟁은 사라졌다. 그러나 1987년의 직선제 개헌투쟁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훨씬 더 격렬했던 1988-1989년의 노동자 대투쟁이 30여 년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대단원이었다.
청년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이후 전개된 긴 민주화투쟁의 대단원은 또 다시 노동자들의 인권보장 요구 시위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기독 지식인들과 복음주의 선교단체 간사들, 복음주의 청년대학부 교역자들과 간사들이 의기투합하여 복음주의청년연합을 결성하고(1987년) 그 핵심 구성원들이 4년 후 〈복음과상황〉을 창간한다. 박철수, 강경민, 이문식, 김호열, 고직한, 한철호, 김회권 등이 〈복음과상황〉 편집위원회를 구성했고 손봉호, 이만열, 김진홍, 홍정길이 공동발행인이 되어 주었다. 〈복음과상황〉 창간호(1991년 1-2월호)는 한국 주류 보수주의교회 구성원 중 극히 일부가 ‘사회’를 품고 복음으로 사회문제에 응답하려고 시도한 ‘사회적 전환’의 표지였다.
그들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선교대회인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가 채택한 ‘로잔언약’을 〈복음과상황〉의 창간 모토로 삼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74년 로잔 선교대회에서 존 스토트, 르네 빠디야, 로날드 사이더, 빌리 그레이엄, 클라우스 보크뮤엘 등은 선교의 개념을 확장하여 개인전도와 사회정의 둘 다 중요하며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특히 클라우스 보크뮤엘이 정리한 ‘로잔언약’ 5항은 사회정의 추구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9가지 행동을 말하고 있다(이승장, “복음주의적 크리스챤과 사회윤리,” ESF 사회잡지 「소리」 창간호〔1985년 6월〕, 6-18〔특히 11-12〕쪽).
1. 정의에 관한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하라(사 1:17; 잠 29:4).
2. 화해를 위한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하라(마 5:9).
3. 온갖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하라(사 58:6; 몬 16절).
4.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라(창 1:27).
5. 아무에게서도 착취하지 말라(암 5:12, 14).
6. 모든 사람을 섬기라(갈 5:13).
7. 악과 불의를 고발하라(사 58:1; 마 23:28).
8. 그리스도의 나라의 의(義)를 보이기를 힘쓰라(마 5:16; 벧전 2:12).
9. 그리스도의 나라의 의(義)를 확장하기 위해 애쓰라(마 28:19; 마 22:37, 39).
〈복음과상황〉은 로잔언약 5항을 붙들고 좀 더 급진적이고 좀 더 보수적이고 신중한 신앙 스펙트럼을 가진 그리스도인을 모아 복음주의적 사회변혁과 사회선교운동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런 흐름에서 복음주의 사회선교단체들이 많이 결성되어 사회선교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1991년의 과도기, 그리고 2020년의 팬데믹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1년은 한국 주류교회 일부에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보수주의로 회귀하기에 적당한 상황, 복잡한 과도기였다. 이때는 소련과 동구권의 체제 전환이 진행되면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패퇴하여 승리했다는 통속적 승리주의 역사관(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초기였다. 국내적으로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등장해 민주화 욕구와 사회적 평등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한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즉 사회문제에 다시 눈을 감아도 되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재상승하려는 때이기도 했다.
〈복음과상황〉이 출현하던 1991년은 이처럼 묘한 과도기였다. 30여 년(1961-1991년)의 민주화투쟁 열기에 부분적으로 응답한 한국교회 일부가 사회적 전향을 시도하던 시기인 동시에 세계적으로는 시장만능주의적 세계화가 강력한 장악력을 갖고 국내정치적 민주화 열기를 삼키려 하던 시기였다. 이런 와중에 한국 주류 교회는 사회문제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무한경쟁주의적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왕 노릇하는 생존의 시대와 보조를 맞추며 후진역행을 시도했다. 한국 주류 교회 일각을 흔들어 ‘사회적 전향’을 촉발했던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이 오히려 한국교회의 사회적 관심, 사회선교적 관심을 흐리게 만들었다.
〈복음과상황〉은 이 기묘한 과도기에 창간되어 한국교회의 사회적 대전향을 견인하고 더 깊게 사회와 조우하도록 추동해왔다. 또한 지난 30년 동안 사회문제에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근 한국교회를 향해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1991년을 전후해서 사회적 전향을 시도한 한국교회의 몸짓은 숱한 전문인 사회선교단체를 산파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성서한국, 좋은교사운동, 기독법률가회(CLF), 기독청년의료인회(기청의), 성경적 토지정의모임(현 희년함께), 기독교학문연구회 등은 복음의 사회적 차원, 교회의 사회선교적 지향을 실천하는 시민단체들이다. 로잔언약 5항 정신에 입각한 복음주의 사회선교단체들은 개인을 전도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뿌려져 열매 맺어야 할 밭인 세속 사회를 기독교적 가치와 미덕, 즉 사랑과 정의로 재구성하려고 분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회선교운동들은 대체로 부진했고 생존 자체가 우선하는 목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문제를 끌어안고 기독신앙적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려 애쓰는 이 사회선교단체들이 열매를 맺어 한국 사회를 기독신앙의 공적 가치와 미덕으로 섬길 수 있으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넓고 길게 보자면, 〈복음과상황〉이 긴밀하게 동역하여야 할 파트너는 여전히 ‘사람’이 모이는 (근본주의든 복음주의든 상관없이) 한국 주류 교회이다. 불충분하고 불완전하지만 주류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살아가려는 신자들의 보금자리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6가지 복음주의 신앙고백을 붙든 교회들은 비판의 여지도 있지만 여전히 신자들을 보양하고 섬기는 그루터기로 남아 있다. 순수하지만 신학적 전망이 좁아 성숙하지 못하는 복음주의 교회들을 하나님께서 한 단계 성장시켜 주신다면, 그들은 우리 사회의 큰 복이 될 수 있다. 아직은 어리지만 하나님의 용사로 거듭날 기독청년들을 보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아둔하고 해이했던 제사장 엘리의 실로 성소에는 어린 사무엘이 자라고 있었고,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섬기던 아버지 요아스의 예배당에는 불만 가득 찬 가나안 신자 기드온이 숨어 있었다. 미디안의 7년 압제로 인해 므낫세 지파 청장년들(3만 2천이나 되는!)이 각자도생을 위한 1인용 산성과 동굴을 파느라 여념 없는 소시민처럼 살아가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불만과 항변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각자도생형 동굴칩거형 소시민 청년들을 미디안 압제가 판치는 세상으로 불러내신다. 므낫세 지파의 곡창지대를 유린하고 파종기와 추수기 때마다 모든 곡식을 약탈해가는 미디안 세력들이 한통치는 세상에 기드온 같은 젊은이들을 하나님 나라 용사로 불러내 육성하신다.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에는 기드온 같은 불만에 찬 냉소적 청년들이 가슴에 항변을 품고 기성세대의 바알과 아세라 상을 깨부수고 하나님의 용사로 탈태할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순간을 기다린다. 코로나 팬데믹은 동굴칩거형 복음주의 교회들을 미디안 세력이 판치는 현실세계로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줄탁동시가 작동하는 계기다. 하나님이 어미닭처럼 충분히 부화된 알을 밖에서 쪼기 시작할 때, 알 속 병아리들은 안에서부터 껍질을 깨려고 스스로 애써야 한다. 팬데믹은 하나님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 통치를 펼칠 기개를 잃고 있는 교회를 쪼아대는 시간이다.
교회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섬길 기회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붙든 6가지 신조는 올바로 해석되기만 하면 얼마든지 로잔언약 5항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특히 교회와 개인전도, 십자가의 구원 능력과 성령의 중생·성화 사역을 강조하면서 사회를 품고 사회선교를 수행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더욱 견실한 동역자가 될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복음주의자들이 자신들이 묵수하는 6가지 신조를 좁게, 사회를 배제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해에 따르면, 성경 전체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분절적 파편적으로 나눈 채 하나님의 근본 요구,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의 6가지 신조도 올바로 해석된다면 사회선교를 추동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복음과상황〉은 이 6가지 신조를 폐기하지 않고 재해석해왔다.
첫째, ‘성경 무오성’은 취사선택적이거나 아전인수일 때가 많다.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다면, 창세기 1장부터 믿어야 한다. 창세기 1장과 모세오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임을 믿는다면, 세상의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땅이며 절대로 개인들이 영구매매하거나 점유할 수 없다는 모세오경과 예언자들의 희년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복음주의자들은 취사선택적 성경 무오성을 옹호하기보다는 통전적인 성경 무오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둘째, ‘형벌대속론적 십자가 이해’는 성자들을 창조해낸 소중한 교리이다. 교회사의 모든 성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상을 믿고 새 피조물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대속적 죽음 교리를 진지하게 믿으면 윌버포스와 클래팜 동지들에게 영향을 끼친 회개의 전형, 영국 노예무역폐지운동의 사상적 대부였던 존 뉴턴 목사 같은 성자들이 일어나게 된다(John Newtown, Out of the Depths[New Canaan: Keats Publishing, Inc., 1981], 5-10, 86-98).
셋째, ‘개인전도’는 사회를 선교하여 변화시키려면 개인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지 사회를 포기하거나 사회 변화를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마이클 그린이 쓴 개인복음 전도의 고전인 《Evangelism, Now & Then》(IVP, 1982)은 사도행전 2, 4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코이노니아 사회 변화는 개인전도의 열매임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적인 개인전도는 참다운 회개를 일으켜 공적으로 봉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낸다. 빌리 그레이엄이나 한국의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행하는 개인전도는 성경적 전통의 개인전도가 아니라 교회 회원을 늘리는 회원배가운동에 가깝다.
넷째, ‘철저한 교회중심’ 신조도 그 자체로는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복음주의 교회는 정통 기독교회의 위대한 4가지 표지(사도적 정통노선, 단일성, 통일성, 거룩성)를 전혀 계승하지 못한다. 교회는 모든 사회 계층민들에게 열린 하나님 나라의 식탁이다. 그런데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우리 사회의 기층민들, 하층민, 노동자 계층이나 도시빈민들에게 무조건적 환영과 포용의 팔을 벌리지 않는다. 복음주의 교회의 인적 구성은 중산층 또는 그에 준하는 경제적 안정단계 계층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교회가 세습 왕조나 거대한 백화점식 사보험회사 같은 구조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영적 경보를 울리지 않는다.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교회관은 병들었고 성경적인 기준에서 멀리 이탈해 있다.
다섯째, ‘성령의 중생과 성화’는 한 순간의 결신만 강조하는 결신주의 구원관에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성령의 중생·성화 교리는 신자의 부단한 성장을 추동하는 교리이지 특정 교파가 독점할 교리가 아니다. 성령은 거듭난 신자를 부단히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여 로마서 8:19-26이 말하는 피조물의 연대적 고통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성령의 중생과 성화는 교회로 하여금 지구공동체의 모든 탄식하는 피조물들의 탄식을 흡수하여 하나님께 도고(禱告, intercession)하는 제사장이 되도록 성장시킨다.
여섯째, ‘예수님의 재림’은 너무나 중요한 교회의 신조이다. 예수님 재림을 그토록 기다린다면 모든 교회의 당회장실은 예수님에게 내어드려야 하고 교황이나 모든 당회장들은 부교역자실로 이동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지구공동체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들)이 지구상에 나타나는 것을 학수고대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참여하기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는 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성령의 탄식에 공감하는 생태신학적 사고로 전향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앓고 신음하는 동물들의 아우성에 응답하는 것이 성령의 탄식에 공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복음주의 교회는 단지 사회적 전향이 아니라 생태적 사고와 함께 지구공동체적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전향해야 한다. ‘지구공동체적 대전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지구공동체의 피조물을 돌보는 왕적이고 제사장적인 돌봄 사역으로 부름받고 있다. 팬데믹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창세기 1장의 아담-하와에게 주어진 본원적 사명을 상기시킨다. 창세기 1:28은 인간의 본원적 사명이 동물들을 돌보고 다스리는 일임을 선언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서구 수입산 복음주의가 기독교 신앙을 위의 6가지 신조로 다소 불균형적으로 요약했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기만 하면 복음주의 6대 신앙강령만으로도 한국교회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전위로 활약할 수 있다. 아직도 로잔언약 이전의 근본주의에 머무는 듯한 한국 복음주의 교회가 로잔언약의 복음주의를 잘 정리하고 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와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넓혀진 복음주의(《하나님의 선교》,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받아들인다면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6가지 신앙고백을 축소주의로 해석하지 않으면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도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으며, 아울러 〈복음과상황〉 같은 잡지는 이렇게 외연이 확장되고 풍요롭게 변화된 복음주의 교회의 공론장이 될 수 있다.
복음주의 교회여, 장막을 넓혀라
외연이 확장된 복음주의 교회, 로잔언약 이후의 복음주의,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복음주의 신학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을 기후변화, 인간문명의 동물생태 영역 침범 탓으로 보는 제레미 리프킨이나 반다나 시바의 진단을 수용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복음주의 교회는 공공 방역의 적으로 떠오르는 일부 개신교회가 초래한 오명을 벗고 팬데믹을 맞아 방황하는 한국 사회에 생태신학적 피조공동체 평화신학을 전파할 기회를 맞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 팬데믹은 미증유의 사회 변화와 소통방식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몸’의 현존을 통해 ‘만나던’ 살가운 대면접촉 문명 대신에, 비접촉 혹은 디지털 공간의 가상적 접촉의 문명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팬데믹이 가져올 변화의 폭과 크기, 범위와 강도를 지금 당장 가늠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영향은 대부분 파괴적이고 해체적이지만 건설적인 효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당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충격적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일 정도로 파괴적이다. 매일 대면접촉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 고밀도 지역인 대도시 자영업자들과 대면 서비스 용역제공자들의 생존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기본소득으로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위기에 처한 이웃들의 생존 염려와 짐을 기꺼이 나누려는 자발적 자비심과 동정심이 발동되지 않으면,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공동체를 ‘사는 자’와 ‘죽는 자’로 양분하며 해체할 것이다.
코로나가 초래한 미증유의 환난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창의적 응전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때에 한국교회가 사도적 공교회성을 회복한다면 코로나 환난에 처해 고난당하는 이웃들을 섬길 수 있다. 창의적 응전이란, 교회가 인류공동체의 대제사장 역할을 맡아 왕 같은 제사장의 돌봄 사역을 전방위적으로 펼치는 일을 의미한다. 아돌프 하르낙이나 로드니 스타크 등은 환난과 역병, 전쟁과 기근의 극한 현실에서 오히려 기독교가 신앙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말한다(로드니 스타크, 《기독교의 발흥》 제4장 “역병, 네트워크, 개종” 참조). 오늘날 교회는 더 넓고 큰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과 보조를 맞춰 죽음, 가난, 참상에 노출된 인류를 위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할 때를 맞고 있다. 극히 미미한 존재들(미생물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르치는 ‘자연의 미물 존중’ 영성을 체득하며, 사회적으로 ‘미미한 자들’을 올바로 대우하는 미덕을 함양할 기회를 맞고 있다. 지구공동체의 제사장 같은 교회는 대면예배를 못 드리는 불편을 과장하기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슬퍼한다. 한국교회는 교회를 넘어 인류공동체 전체의 안전과 평화,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지구공동체의 대제사장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할 때이다.
나가는 말
1919년에 쓴 윌리암 예이츠의 〈재림〉(The Second Coming)이라는 시는, 한 세계를 안정감 있게 지탱해온 ‘중심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를 슬퍼하는 애가이다.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1918-1919년)으로 묵시적인 재난을 경험한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이 시에서, “최선의 사람들은 확신부재를 경험하고 최악의 사람들은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역설”을 묘사했다. 중심이 무너졌기 때문에 기묘한 양극단이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를 안정감 있게 지탱하는 중심은 제사장적 사랑과 돌봄, 자비와 긍휼이다.
다수의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적 미덕과 교양으로 코로나 방역에 묵묵히 협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적극적으로 제사장적 애휼을 공공연히 실천하고 세계의 중심을 지탱시키는 중보자적 시민으로 ‘행동할 확신’이 부족하다. 소수의 오도된 그리스도인들은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 차 광장을 점령하여 자신들의 신앙과 예배 자유를 지키자고 호소한다. 이런 불행한 조합은 한 시대의 중심 가치와 미덕을 지켜낼 중심세력의 부재로 나타난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회를 안정감 있게 지탱하는 중심이 연약하다. 맡은 바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며 사회보험과 세금 등을 통해 시민적 의무를 다하면서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중심세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팬데믹은 한국교회에 타자화되고 소외된 자연과 사회의 ‘연약한 피조물’들을 부드럽게 돌보는 제사장적인 애휼심으로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기둥이 되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동물생태계 파괴와 착취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은 인간보다 더 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더욱 애정을 갖고 돌보시는 연약한 피조물이 동물이다. 연약 피조물의 생존권은 하나님의 관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강한 포식자인 인간에게 동물들을 다스리고 돌보라는 사명을 주셨다. 코로나 사태는 그동안 인간 문명의 확장과 범람으로 살기가 힘들어진 동물들의 아우성, 탄식, 간구가 하나님께 올라가 열납되는 시간일 수 있다. 하나님은 코로나 사태를 막을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동물학대와 착취를 더 이상 참지 않으시려는 듯 인간 문명 전체를 교란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에게 살던 극소미물 바이러스가 인간을 습격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계신다. 이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자신에게 추궁하고 문명적 대전향을 기도하고 성찰하고 회개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출현을 학수고대하신다.
김회권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ESF(한국기독대학인회)에서 회심하고 신앙 훈련을 받은 뒤 11년간 ESF 간사로 섬겼다. 장신대 신대원을 나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등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