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호 에디터가 고른 책]

데린 게스트 외 16인 엮음 /&nbsp;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위원회 옮김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45,000원<br>
데린 게스트 외 16인 엮음 / 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위원회 옮김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45,000원

읽으려고 샀지만 미뤄둔, 마음에 짐으로 남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읽을 생각 없이 구매하는 서적도 가끔 있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말한 ‘곁’의 ‘곁’이나마 되는 빚진 마음으로. 펼쳐보니 모든 구절을 주석하는 책은 아니다. 젠더·섹슈얼리티 관점에서 논쟁적이었던 혹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내심 불편했던 본문들에 집중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표지의 ‘길벗체’가 눈에 들어오는 이 책은 ‘역사상 최초’로 펴낸 퀴어 성서 주석 히브리성서 부분의 완역본이다.(신약성서 주석은 하반기 출간 예정) 집필에 참여한 17명의 퀴어 신학자들은 페미니즘, 퀴어, 해체주의, 사회과학과 역사비평 담론, 고고학적 발견, 이웃 종교 해석 등을 활용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질문들을 다시 묻고 새로운 시각에서 살핀다. 소돔의 멸망이 동성애 탓인지 아니면 집단 강간 위협을 통한 재물의 독점 탓인지, 남성 언어로 기록된 성서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성서는 느헤미야와 같은 환관과 간성에 대해서 어떻게 축복하는지 등등. 국민인식조사(2020)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는데, 이 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라는 지난한 논쟁을 떠나, 착한 사마리안 사람의 비유, 그리고 올해 연달아 죽음을 선택한 성소수자들을 떠올려본다.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얼마나 혐오와 차별을 당하면, 게이들의 29%, 트랜스젠더들이 40%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겠습니까? 더구나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한 성소수자들의 자살 시도가 38%나 더 많을 정도로 교회는 도움이 절실한 청소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11쪽)

다시 책 앞부분으로 돌아가 훑듯이 읽은 서론 속, 눈길이 멈춘 구절이 있다. 엮은이가 인용한 신학자 윌리엄 컨트리맨의 글이다. “모든 인간의 에로스는 흠이 있지만, 에로스는 여전히 우리의 관념 중 최상의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가장 밝은 보물이다. 바로 이 에로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집으로 부르신다. … 사랑은 우리를 계속 부수어 열고 우리가 쌓은 담장 밖의 새 세계를 보여준다. 사랑은 우리에게 서로를 보여주고 하나님을 보여준다.”(51-52쪽)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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