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호 에디터가 고른 책]
졸업 후 ‘취업 전까지만’이라고 생각했던 주택협동조합에서 산 지 만 2년이 넘었다. 주거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출퇴근 인사를 하고, 서로를 잘 모르면서 엘리베이터에 생일 축하 파티룸을 꾸며주는 커뮤니티인 이곳. 가족에 대한 법적 개념을 더 넓히는 일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돌봄이 가족 밖 타인을 통해 더 잘 수행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특히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왔기에) 평가절하된 돌봄을 재고할 수 있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만난 이 책은, ‘돌봄’의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영국의 학술 모임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가 썼다. 돌봄을 시장과 가족에게 떠맡겨오며 “서로를,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실패”(팬데믹은 이를 확인시켰다)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스스로를 돌볼 여력조차 나지 않는다. 이에 맞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보편적 돌봄’ 이다. “이는 돌봄을 삶의 모든 수준에서 우선시하며 중심에 놓고, 직접적인 대인 돌봄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에 대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지는 사회적 이상을 말한다.”
이것이 하나의 구호나 호소로만 그치지 않고 인종·국적·계급·젠더·종차별 등 모든 차별과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돌봄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책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말하는 것은 “돌봄이 중심이 된 정치”다. 가족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현 결혼제도에 속할 수 없어도, 국적이 달라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돌봄 인프라’ 말이다. 책은 친족·공동체·국가·경제·생태계로 범위를 넓혀가며 이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공간의 공공화, 임금노동 시간의 단축, 해외의 글로벌 엘리트가 아닌 지역과 공동체를 살리는 (아웃소싱이 아닌) 인소싱, 주거 및 플랫폼 협동조합, (에너지 탈탄소화 및 녹색 일자리 창출이 의제인) 그린뉴딜을 함께할 ‘초’국가적 연대 등 논의가 풍성하다. 돌봄에 대한 논의들은 많지만 대안적 ‘상상력’은 부족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책이 아닐까. 가슴이 슬몃 뛴다. ‘돌보는 국가’, 이를 넘어선 ‘돌보는 세상’이라니.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