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호 에디터가 고른 책]

가난의 문법 / 소준철 지음 / 푸른숲 펴냄 / 16,000원
가난의 문법 / 소준철 지음 / 푸른숲 펴냄 / 16,000원

한밤중, 스티로폼 박스들을 들고 밖을 나섰다. 이웃끼리 쓰레기를 암묵적으로 버리는 곳에 쌓아두고 추위에 후다닥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다른 쓰레기를 들고 다시 와보니 스티로폼 박스들만 사라져 있다. 10초 안팎. 수거차량이 올 시간은 아니다. 두리번거렸지만 어둑한 주택가엔 아무도 없었다.

한 도시사회학 연구자가 쓴 가난의 문법은 이처럼 재활용품을 낚아채생계비를 마련하는 노인들과 그 일에 주목한다. 왜 재활용품을 수집하게 되었을까? 65세 이상은 노인으로 규정되어 은퇴하는데 지금 70대 이상은 사회보장제도가 안착되기 전에 이미 노령기에 접어들어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노인일자리사업은 경쟁이 심한데다 일자리의 질이 낮아 생계를 유지하기엔 부족한 수준이다. 따라서 노인들은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산업에 뛰어든다.

그런데 현재 쓰레기 수거 시스템에서 이 노동은 비공식이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가는 아직도 문전수거 방식이며 관리인이 없다. 이때 노인들이 수집한 재활용품은 건축법상 그 존재가 불법인 도심의 고물상에 판매하는데,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2012년 당시 시급 380원 미만(114)이었다. 책은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1위인 한국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의 노동과 그 생태계,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시도, 노인이라는 밋밋한 규정에 대한 의문 제기, 대안 등 촘촘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가난한 처지의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동시에 이들을 위한 현실적 정책 마련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별히, 저자는 여성 노인을 주목한다. 폭행의 대상이 되기 쉽고 속도가 생명인 재활용품 수집 노동에서 불리하며 가사 노동을 겸해야 하는 이들. 이에 저자는 여러 이유 때문에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70대 중반 여성의 평균적 존재인 윤영자를 구상한다. 다름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며 살아왔던 이 시대 노인들의 보통 모습이다. 늘 열심히 살았다. 풍족했던 젊은 시절엔 자녀들을 잘 키워보겠다며, 나이 든 지금엔 자신을 스스로 건사해보겠다며 말이다. 그녀의 노력은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 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한 기분이 든다.”

 

김다혜 기자 daekim@goscon.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