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호 3인 3책] 《내 영혼의 번지 점프》 / 루시 쇼 지음 / 김유리 옮김 / IVP 펴냄 / 2006년

언젠가 노사연 누님은 노래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언제 들어도 아름답지만, 거짓말이다. 우리의 만남은 기본적으로 우연이다. 내가 동아시아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나, 대학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을 했고, 이 글을 연재하는 것도 우연이다. 이건 “우리의 바램”이긴 커녕 “나의 바램”도 아니었다. 정말로.

‘우연’이란 말은 무언가 가벼워 보인다. 필연이나 운명과 같은 말들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워 보이고, 계획이나 체계와 같은 말들에 비하면 한없이 물러 보인다. ‘바램’(사실 ‘바람’이 올바른 표기)과 나란히 놓았을 때 ‘우연’은 별다른 방향성이 없다. 하지만 가볍고, 무르고, 별다른 방향성이 없는 만큼 미래에는 열려 있다. 미래를 애써 좌지우지하려 하지도, 커다란 그림을 그리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책과 만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바람’을 갖고, ‘계획’을 세운 뒤 차곡차곡 머릿속에 그렸던 책들을 만나거나, 그저 손에 잡히는 책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는 필연성, 계획성, 체계성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우연성, 비계획성, 비체계성의 방식이다. 사실상 전자의 길은 넓고, 후자의 길은 좁다. 무게축이 지나치게 전자에 쏠려 있다. 인터넷 서점을 수놓은 온갖 ‘추천 도서’들,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잔뜩 깔린 ‘선택받은 책들’, 특정 책들을 ‘명저’로 혹은 ‘고전’으로 소개한 안내서들과 특정 ‘신간’만 소개하는 언론들은, 형태는 다르다 할지라도 결국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당신은 이 책을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당신이 20,000원을 갖고 있다면 이 목록 안에서 책들을 만나는 게 좋습니다.”

이 방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사실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은, 계획적으로, 체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게 좋다(그 덕에 용서점이 먹고 살고 이렇게 책 관련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삶이, 만남이, 읽는 책이 모두가 ‘필연적’으로, ‘기획’을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삶은 팍팍할 것이다. 우리 삶엔 (언제나 좋은 모습으로 찾아오진 않지만) ‘우연’이라는 활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삶은 우연적인 요소로 그득하고, 그런 방식으로 책과 만나는 길이 여전히 (좁지만 다양하게) 열려 있다. 한적한 길가 덩그러니 있는 동네서점, 대형서점 매대 아닌, 대다수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서가, 도서관 한 쪽 구석, 그리고 내 방 한 쪽 서가에 쌓인 ‘선택받지 못한 책들’, 선택받고 버림받은 책들의 집적체라 할 만한 헌책방에 잔뜩 쌓인 책들은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우연한 만남을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름휴가를 보내며 ‘선택받지 못한’ 책인 《내 영혼의 번지점프》를 만났다. 출간 10년 된, 그닥 사랑받지 못한 책이다. 이 우연한 만남 덕에 나는 루시 쇼가 《시간의 주름》 저자인 매들린 렝글과 절친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요즘 출판계에서 회자되는 웬델 베리와 미로슬라브 볼프 등의 인물들을 또 다른방식으로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노사연 누님 노랫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지금, 이 순간’ ‘우연히’가 아니라, 내가 메들린 렝글, 웬델 베리, 미로슬라브 볼프를 전혀 모를 때, 번지점프라는 말에 혹하지 않던 시절에 만났다면 나는 별다른 기쁨을 못 누렸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박용희
장신대 구내서점, IVP(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산책’ 북마스터로 일했다. 책, 여행, 사람을 좋아한다. 새해 들어 고양시 덕은동에 헌책방 ‘용서점’을 내고 책과 더불어 하루를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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