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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이 아닌 신학적 정치학
제임스 스미스의 《왕을 기다리며》(IVP, 2019)
[346호] 2019년 08월 28일 (수) 12:08:48 최경환 goscon@goscon.co.kr
   
 

1. 저자의 관심: 하이브리드 신학자
보통 유명한 학자들의 사상적 궤도를 살펴보면, 전기 사상과 후기 사상(혹은 더 꼼꼼하게는 중기 사상)이 각각 다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문은 계속 진보하고, 학자 개인도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생각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평가들이 어떤 학자의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면서 그 변천사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명예로운 일이고, 그만큼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칼빈대학교 교수 제임스 스미스가 강연하는 모습 ⓒ복음과상황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칼빈대학교의 제임스 스미스는 국내에서 가장 ‘힙’한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학문 이력을 추적하면 상당히 흥미롭다. 대학에서 아내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오순절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거기서 오순절 영성과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체험한 그는, 흥미롭게도 개혁파 신학과 학문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며 개혁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 그의 모든 책에는 개혁파 신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하이데거와 데리다를 기반으로 종교철학을 연구한 존 카푸토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학과 철학을 두루 공부한 제임스는 이후 ‘교회를 위한 철학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상당히 많은 책을 빠른 기간에 써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젊은 나이임에도 그에 대한 연구서가 나올 정도다.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임스 스미스가 추구하는 신학은 그의 신앙 여정만큼이나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오순절 교회에서의 신앙 체험과 개혁파의 신학이 어우러지고, 거기에 현대 프랑스 철학이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하이브리드 신학이 만들어졌다. 이번에 문화적 예전 시리즈 제3권으로 나온 《왕을 기다리며》는 그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던 기독교 사회윤리와 공공신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해온 제임스 스미스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개혁파 신학, 특히 신칼빈주의의 유산을 기반으로 ‘하나님 나라 공공신학’을 제시하면서도 그와 정반대의 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기독교 윤리를 적극 수용한다. 또한 급진 정통주의 신학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신학을 수용하면서 성과 속,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구분을 넘어서고자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하고, 가장 중요한 신학적 준거점으로 삼는 신학자는 바로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후기 근대의 문화, 사회, 정치사상을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재해석하고, 교회의 사명을 재발견한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신학적 자원을 끌어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전통과 현대를 잇고,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신학자이며, 다양한 신학의 스펙트럼을 적절하게 요리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녹여낼 줄 아는 실력자라는 점이다.

2. 편집자의 선택: 출판사가 만든 독자
제임스 스미스에 대한 세간의 높은 관심과 뜨거운 반응을 생각하면 ‘문화적 예전 시리즈’ 3부작의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유 중 하나는 책이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임스는 이 책의 난이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했다. 제1권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에서 자신의 프로젝트 전체를 개관하고, 2권에서는 ‘철학적 인간학’을, 3권에서는 ‘정치학’을 본격적으로 집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1권의 내용은 쉽지 않았고, 그럼에도 예상한 것보다 일반 독자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역설적인 반응이다. 결국, 제임스는 책의 방향을 틀어 좀 더 쉬운 내용으로 2권과 3권을 집필했다.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와 《왕을 기다리며》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 이 책들을 이해하려면, 상당 수준의 철학 지식과 배경지식이 먼저 필요하다. 그가 언급하는 여러 학자의 개념과 설명은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어 전공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학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과연 이런 종류의 책을 소비하는 독자층은 누구일까?

한국 IVP에서 출간하는 신학서들은 대부분 신학대학교나 대학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전문 서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쉽고 실용적인 책을 출간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톰 라이트, 미로슬라브 볼프와 같은 신학자들은 글의 난이도 차가 심하지 않고 대중적이면서도 신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을 갖춘 저자들이다. 제임스 스미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들의 책은 분명 학계에서 그 실력을 충분히 인정받았으면서 동시에 기독교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책이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고 보면 이들의 책은 애매한 독자, 애매한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 어쩌면 회색 지대에 속한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책이 국내에서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신학화라 할 수 있다. ‘대박’까지는 아닐지라도 제임스의 책이 어느 정도 팔리고 있다면, 그것은 대중의 신학적 수준이 높아졌고, 책을 읽고 담론을 끌어내는 독자의 수준도 한껏 올라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일을 IVP가 하고 있다.


3. 비평가의 시선: 신학적 정치학
이 책의 핵심 주장을 간추리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교회는 하나의 대안적인 정치체이고, 예배를 통해 그러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그동안 공공신학은 교회와 국가, 거룩한 것과 세상적인 것의 분리를 기본값으로 산정하고,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 지로 문제를 설정했다. 그 결과 기독교와 정치를 주로 공간적 배치 안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당한 참여 방식을 고민해왔다. 하지만 제임스가 보기에 “정치적인 것은 공간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이다.”(39쪽) 우리의 종교 활동뿐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집단과 활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습관의 방향 그리고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의 문제다. 따라서 교회를 탈정치적인 공동체로 보려는 해석도 잘못이지만, 정치 활동이나 조직을 단지 중립적인 인간들의 의사소통 구조로만 보는 것도 잘못이다. 교회는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철저히 정치적인 공동체이며, 국가 역시 온갖 욕망과 욕구들로 가득한 공동체다.

그렇다고 제임스가 전통적인 스타일의 정치신학을 옹호하거나 재탕하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 유럽과 남미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전개된 정치신학 혹은 해방신학은 기독교와 국가, 교회와 정치의 대립 구도 속에서 성서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통해 불의한 정치를 어떻게 변혁할지 고민했다. 공공신학은 일정 부분 그 연장선에 서 있다. 하지만 제임스가 말하는 공공신학은 이런 방식의 참여와 전혀 다르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정치 영역이나 공론장에 직접 참여해 자신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것은 잘못된 방식으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기독교 공공신학은 이제 기존의 방식으로 정치 참여를 할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사람의 욕망을 재형성하고 훈련함으로써 사회를 자극해야 한다. 기독교 공공신학은 세속 사회 속에서 단순히 민주주의의 가치를 긍정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합의를 통해 의견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대화의 파트너로 존재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종말론의 비전을 미리 선취해 이 세속 사회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속해서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이라는 씨앗은 하나님 나라라는 종말론의 비전에 비추어 계속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한다. 

제임스 스미스는 자신의 공공신학을 세워가기 위해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끌어온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굵직한 신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과 함께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충분히 민주주의적 가치와 덕목에 기여할 수 있고 이 둘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프리 스타우트, 기독교는 자유주의 체제에 맞서 대안 공동체로서 신학적 정치학을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탠리 하우어워스,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 은혜와 영역주권 사상에 기반해 원리적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리처드 마우, 기독교 예배가 가진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세속 사회에 새로운 도전과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올리버 오도노반의 신학이 동원된다. 이들 신학자의 논의는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신학으로 인정받는 것들이다.

제임스 스미스의 문화적 예전 3부작을 읽어 본 독자라면 분명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예배 잘 드리자는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썼나?’라는 냉소적인 반응에서 ‘복잡한 현대 신학의 논의를 이토록 잘 정리하고, 자신의 주장까지 논리정연하게 제시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라는 경탄까지, 그야말로 다양할 것이다. 어쩌면 제임스의 주장은 상당히 도발적이면서도 도전적이다. 매주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욕망과 습관을 형성하고 그 욕망이 결국 세상을 향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뒤집어서 질문해보자. 과연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렸기에,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일까? 어쩌면 제임스는 진정 이 사회의 소망과 비전은 결국 교회에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종말론적 소망을 품고 오늘의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에서 세상의 소망을 찾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4. 독자의 취향: 독자의 품격
독자라면 나름 자기만의 ‘최애’ 저자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책을 쓰더라도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는 신뢰가 생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살 수 있는 그런 저자 말이다. 제임스는 분명 그런 저자 중 한 명이다. 만약 여러분의 최애 저자 목록에 제임스 스미스가 담겨 있다면, 분명 당신의 품격이 올라갈 것이다. 단순히 최근에 떠오르는 신예 신학자의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제임스가 언급하는 학자들, 그가 언급하는 최신 논의와 신학적 상상력, 특별히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도를 큰 필치로 스케치하면서 대가들의 논의를 날카롭게 비평하는 읽는 것만으로 당신은 이미 매우 훌륭한 독자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 다만 허투루 읽지 말고 각주까지 꼼꼼하게 읽기를 바란다. 디테일은 각주에 있다.

이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다. 신학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으로 신학을 배운 학자에게만 배울 수 있는 내용도 있겠지만, 이제는 국내 기독 출판계에서 최신작을 번역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누구나 쉽게 최신 신학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왕을 기다리며》는 최신 신학자들의 논의를 탁월하게 정리한 신간이다. 이 책의 독자는 이미 이 분야의 최신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이제 최신 신학 담론을 생산하는 장소는 신학대학교가 아니라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 다양한 지식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곳이 기독교 아카데미이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책을 읽는 독서모임이든. 공공신학의 최신 담론은 이 책을 읽는 바로 그곳에서 생산될 것이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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