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 에디터가 고른 책]

   
▲ 월터 브루그만 지음 / 윤상필 옮김
성서유니온 펴냄 / 16,000원

월터 브루그만의 특강을 토대로 쓰인 책이다. 특강 장소는 풀러 신학교, 특강 목적은 앞으로 교회를 꾸려갈 이들에게 정의, 은혜, 율법이 얼마나 촘촘하게 엮여 있는지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브루그만은 그들이 성경 숙독(熟讀)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제대로 동참하도록 이끈다. 진정 우리는 성경이라는 낡은 텍스트를 무기로 제국의 권세가 기승을 부리는 서슬 퍼런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의 지칠 줄 모르는 소비주의, 독보적 군사력, 심화되는 빈부 격차를 볼 때 이 나라는 분명 착취와 상품화를 밀어붙이는 강력하고 고집 센 투사다. … 따라서 성경을 아래에서부터 새로이 해석함으로써 저항하고 대안을 창조하라는 부르심 앞에 서야 한다.”

저항의 성패는 ‘이웃’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려는 제국 이데올로기에 맞서 이웃을 향한 신실한 마음을 지켜내는 데 달렸다. 착취와 상품화 이데올로기에 맞서 이웃의 존재를 살려내는 방법은 약자를 갉아먹는 권력에 맞서고(정의), 자격을 따지며 구별 짓는 문화에 저항하고(은혜), 율법의 정신으로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저자의 성경 읽는 방식과 태도가 강렬한 메시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기계적으로 읽다가 중간중간 텍스트에 갇히지 말 것을 당부하는 대목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다.  

“‘이웃’이라는 말을 굳이 내밀한 대상으로 낭만화하지 말라. 외려 이웃이라는 용어는 ‘지체’를 말한다. 지체란 같은 운명을 공유한 일원으로서 공동선이라는 질서 아래 함께 살아간다.”

텍스트를 피해가거나 왜곡해서도 안 된다. 브루그만은 율법을 설명하면서 낡은 텍스트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몇몇 계명은 원시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배타적인 전제와 관습 그리고 폭력의 가혹함을 증폭시키는 제재 조항까지도 반영하고 있다. … 복잡다단한 해석의 가능성을 완전히 열어 둔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수중에 두시려는 야웨의 야심은 타자를 환대하는 야웨의 관대함을 압도하곤 한다. 나는 야웨께서 반드시 해명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곳곳에 배치된 저자의 통찰은 ‘정의’ ‘은혜’ ‘율법’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안내자다. 물론 그의 통찰이 흘러나오는 근원은 낡은 텍스트, 성경이다. 지면 절반 가까이가 성경 텍스트로 채워져 있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읽게 된 이유다.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