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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 앓는 사회, 깨어 있어야 합니다”
[316호 사람과 상황] CBS <김현정의 뉴스쇼> 손근필 책임PD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1:19:33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손근필 책임PD  ⓒ복음과상황 오지은

<김현정의 뉴스쇼>(이하 ‘<뉴스쇼>’)는 CBS 라디오의 간판 시사프로다.(서울 표준FM 98.1MHz, 월~금 아침 7시 30분~9시) 10년간 1만여 명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세상으로 울려 퍼졌다. 소외된 이웃들에서부터 무장단체 탈레반 대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뉴스쇼> 전파를 탔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도 그때그때 의미 있는 인물을 섭외해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이 시사프로의 책임피디인 손근필(54) CBS 대PD를 만났다. 그는 매일 <뉴스쇼>를 꾸리기 위해 하루 24시간 긴장한 채 자세를 곧추세운다. 어디에 그물을 던져야 할지 정신을 가다듬고 시사의 물길을 응시한다. 그렇게 매일이 쌓여, 시사프로 PD로는 ‘이례적으로’ 네 번째 대선을 맞는다. 그는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지난 2월 8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난 그는 “요즘처럼 예측 불가능한 때는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 라디오 PD의 길에 들어선 계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1989년 대학 졸업하면서 라디오 피디로 CBS에 입사했습니다. 방송국이 KBS, MBC, CBS 세 곳 있을 때지요. 당시는 ‘CBS와 함께 개표방송을!’이라는 구호가 있었고, 그 구호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CBS는 많은 신뢰를 얻고 있었죠. 신군부 시절이기도 해서 다른 방송은 믿을 수 없고, 기독교 방송인 CBS가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어요.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어두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고민하다가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사랑을 전하는 소금 역할을 하고 싶다, 하는 마음으로요. 

― 구체적으로 어떻게 ‘빛과 소금’ 역할을 하셨나요? 
초기에는 씨씨엠(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게 사명이었어요. 아름다운 음악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었죠.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어요. 제가 달란트를 잘 활용했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이었죠. 매주 전국을 돌며 공개 방송을 한 거예요. <CBS 가족 복음성가 경연대회>를 연출하며 전국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큰 교회는 물론, 30명 모이는 교회까지 가리지 않고 갔어요. 복음성가는 온 세대가 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같이 듣고 부를 수 있는 음악입니다. 인기가 대단했어요. 지방에서는 더 열광적이었죠. 지금으로 말하자면 <열린음악회> 같은 거라고 할까요? 물론 <열린음악회>가 생기기 전입니다. <CBS 창작 복음성가제>를 처음 기획하고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도 했어요. 겁이 없었죠.(웃음) 새로운 CCM을 많이 보급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문학의 밤’ 경험 있잖아요. 저도 그런 걸 연출하고 진행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 예능(藝能)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이력을 살펴보니 CBS를 그만둔 적도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CBS가 시사 쪽으로 채널 특성화를 했어요. 저한테 시사프로 제작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어요.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했죠. PD를 그만두고, 음반 제작사를 차리기도 했어요. 공연도 기획해보고요. 청소년들에게 ‘방황기’가 필요하듯, 저도 그때 방황했던 시기죠. 몇 년을 방황하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소통 방식이 ‘소리’라는 걸 깨달은 거죠. 소리를 통한 소통 중에서도 ‘나는 라디오 방송이 맞는구나’ 느끼게 된 시기였어요.

   
▲ "90년대 중반, CBS가 시사 쪽으로 채널 특성화를 했어요. 저한테 시사프로 제작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어요.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했죠." ⓒ복음과상황 오지은

― ‘시사프로 제작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현재 CBS의 간판 시사프로의 책임PD를 맡고 계시잖아요. 시사프로 PD로 네 번째 대선을 맞는 베테랑 PD의 과거로는 충격적이네요.(웃음)
2000년부터 방송가를 전전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였어요. 그렇게 싫었던 것을,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거지요.(웃음) 시사도 음악과 똑같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느낀 거죠. 중요한 것은 ‘공감’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나만의 색깔로 시사프로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알고 보니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도 있는 게 시사더라고요. 당시 탈북민, 노숙인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세상에 알리기도 하고요. ‘카드대란’으로 벼랑 끝에 몰린 차상위 계층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요. 그러다가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시사 쪽으로 깊이 들어오는 계기였죠.

   
▲ "저는 방송 일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배운 게, 이런 때는 저항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소리를 지르든 침묵을 하든 어떤 방법으로든 저항해야 한다고요. 제가 선택한 방법은 저항 음악을 두 시간 동안 내보내는 거였습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당시에 ‘저항 음악’만 두 시간 동안 내보낸 사건이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참 원통한 사건입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효순이 미선이가 희생되고 제대로 사과도 못 받은 참혹한 역사이지요. 국민들이 그 억울함과 분노로 어찌할 줄 모르던 때고요. 저는 서울방송(SBS)의 <손숙 배기완 아름다운 세상>이란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입니다. 프리랜서로요. 당시 방송에서는, 특히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소파(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불평등 문제를 비롯한 사회 이슈를 언급하는 게 금기였어요. 그런데 저는 방송 일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배운 게, 이런 때는 저항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소리를 지르든 침묵을 하든 어떤 방법으로든 저항해야 한다고요. 제가 선택한 방법은 저항 음악을 두 시간 동안 내보내는 거였습니다. 특별한 멘트 없이 저항 음악으로 두 시간을 꽉 채웠죠. 물론 사전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당황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방송은 나갔어요. 반향이 컸습니다. 교양 프로그램을 시사화했던 시간이었어요. 시사와 음악이 함께 갈 수 있구나, 음악 공감·시사 공감·다큐 공감이 사실은 다 같은 거구나, 확신한 시기였어요. 물론 회사에서는 이런 방송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었지요. 심의실에 불려가기도 했고요. 내가 살아온 방식이 여기서는 안 맞는구나, 2004년에 다시 CBS로 돌아오는 계기 중 하나였어요.

― 그 ‘저항’이 혹시 신앙에서 오는 것이기도 한가요? 다른 인터뷰 자료를 보니, 정권의 언론 핍박에 대항하는 표현으로 “CBS는 일차적으로 보도기관이지만, 또 한편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곳이기에 호락호락하지 않다”라고 하셨던데요.
사실 저는 “오직 복음”을 외치는 매우 복음주의적인 신도입니다. 방송을 하면서도 늘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침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을 읊어요. 하나님의 의(義)를 드러내는 일을 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그건 순교잖아요. 그건 정말 행복한 것이죠. ‘진리의 편’에서 보도를 하다 보면 핍박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故) 김영한(청와대 전 민정수석) 비망록’을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이 정권이 언론을 얼마나 못살게 했나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무리한 징계를 주고요. 우리도 적잖은 핍박이 있었어요. 결국,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아냈어요. 그러한 부당한 압력에 무릎 꿇지 않는 정신은 신앙에서 온다고 봅니다.

― “진리의 편에 선다”라는 표현도 자주 하시고요.
그 표현도 사실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를 떠올린 것이고요. 이런 정신으로 무장한 기독교 언론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순례자의 길을 걷고자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럭저럭 걷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걷고 싶은 거지요. 저는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신앙인입니다. 처음 입사해 여러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과 지금 <뉴스쇼>를 제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 복음을 드러내는 일이죠. 사회에 거룩한 영향을 끼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희생이 있더라도 행복한 것이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 분수를 넘어버렸네요.(웃음) 대학생 때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80년대지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민주화 투쟁이 벌어졌던…. 두려웠어요. 구속될까 봐 무서웠고, 때로는 도망도 쳤지요. 그럼에도 그때 스무 살 때 한 다짐이 있어요. 가난한 사람과 어두운 곳을 향하겠다. 지금 저는 너무 풍요하게 살고 있어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권력에 덜 빌붙으며 사는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곤 해요.

   
▲ "저는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신앙인입니다. 처음 입사해 여러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과 지금 <뉴스쇼>를 제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 복음을 드러내는 일이죠."  ⓒ복음과상황 오지은

― 가난한 사람과 어두운 곳을 향하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나요. ‘장애인 스마트권(權)’이라는 의제를 설정해 <소리를 보여드립니다>라는 CBS 창사 60주년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이 꽤 많습니다. 아내가 그쪽 일을 하고 있거든요. 내 달란트로 장애인 관련 일을 어떻게 도울 수가 있을까 생각하다 시작한 일이었어요. 스마트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을 고민한 게 <소리를 보여드립니다>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동시에 장애인에게도 스마트 미디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요. 이를 테면, 수화 인식용 스마트 장갑을 끼고 수화로 이야기하면 수화를 해석해 음성을 내보냅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스마트 기기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예요. 시청각 장애인의 소통할 권리, 그 당연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3부작 다큐멘터리입니다.

― <소리를 보여드립니다>는 ‘2014 뉴욕 페스티벌 라디오 국제상’에서 UN-DPI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유력 방송사와 광고사의 작품 수백 편이 경합을 벌이는 시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뉴욕 페스티벌에서 프로그램 분야 동상을, 유엔(UN) 정신을 잘 구현한 작품에 주는 UN-DPI 금상을 받은 겁니다. 상 받은 게 죄송스러워요. 아내처럼 평생 장애인 관련 일을 하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3년 정도 준비했을 뿐인데 (물론 힘들기는 했지만) 그런 상을 받은 게 미안하지요. 사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은 CBS가 창사 때부터 가져온 정신이었습니다. 스마트 미디어의 도입도 일찍 시작했고요.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과 SNS가 융합이 되니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겁니다. 

― <뉴스쇼>에서도 소외된 현장의 목소리가 자주 방송됩니다.
기본적으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요. 그렇다고 부유한 사람에 대한 적개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관심을 더 갖자고 말하는 거지요. 가능하면 따뜻한 시선으로요. 되도록 관용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이요. 우리 프로의 최고 모토가 공감입니다. 우린 어떻게 이 사회에 건강하게 공감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씨름하는 거지요.

   
▲ "우리 프로의 최고 모토가 공감입니다. 우린 어떻게 이 사회에 건강하게 공감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씨름하는 거지요." ⓒ복음과상황 오지은

―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이 있다면요?
2009년 1월 20일 오전 8시 45분 방송이죠. ‘용산 참사.’ 그날 방송을 하는데 재개발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던 곳에 불이 났다고 속보가 올라왔어요. 전날 그곳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대치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비극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요. 근처에 있을 만한 사람들을 수십 명 수소문했더니 두 분이 거기 계시더라고요. 스마트폰을 통해 생중계했습니다. 용산 참사를 처음으로 보도한 방송이었죠. 정부와 자본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독교방송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그때 그 사건은 개인적으로도 정말 충격적이었고요. 그 방송을 잊을 수가 없어요. 비극적인 상황, 용산 참사는 이후에도 우리가 꽤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어요. 치유와 화해를 위해 고민했던 사건이었고요. 해마다 1월 20일 전후가 되면, 유월절 때 무교병을 먹듯이 기억하게 됩니다.  

― 그런 고민의 힘 때문일까요? <뉴스쇼>발(發) 뉴스들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가 매우 잦아졌습니다. 다른 언론에서도 인용을 자주 하고요. 책임PD로서 시사의 맥을 잘 짚어야 할 텐데요.
책임이 막중하죠. 시사프로 PD는 고기가 지나는 길목에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물이야 누구나 던지면 되겠지만, 그물 던질 권한을 방송국에서 PD에게만 준 거잖아요. 아무 곳에나 그물을 던질 수는 없어요. 게을러질 수도 없고요. 고기 지나는 길목을 파악하려면 24시간 온 역량을 가동해야 합니다. 153마리는 못 건지더라도 100마리 정도 건질 수 있는 포인트는 잡아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시사의 물길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물길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모색하려고 하죠. 시사프로 제작하는 동안은 저 자신을 ‘공공재’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내에게도 “내가 지금 군대에 있는 상황이다. 그것도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있다고 보면 된다”고 이해를 구했어요. 나에게 이 일이 주어진 동안에는 계속 이렇게 바쁠 것 같아요.

― 요즘처럼 시사의 맥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더 바쁠 것 같습니다. 맥 짚기도 힘들 것 같고요.
지난 10월 국정 농단으로 시작된 촛불집회, 그리고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가 바뀌었어요. 제가 아마 시사 라디오 PD로는 최고 선임자에 속할 겁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사회 이슈의 흐름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번만큼 안 보인 적이 없었어요. 하루에도 판이 두 번 세 번 뒤집힙니다. 오늘 준비한 아이템이 내일이면 쓸모없어집니다. 다시 준비해야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밖에 못 잔 날도 많아요. 꿈에서도 계속 섭외를 하고요.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는 상황이기에 항상 깨어 있으려고 해요.

― “더 큰 혼란”이요? 
지난 12월에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모든 혼란이 정리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보세요. 저는 탄핵 인용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갈등이 폭발할 거라고 봅니다. (물론 그렇지 않으면 더 좋겠어요.) 소위 말하는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가 양분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전만 해도 ‘의미 없는 수’(태극기 집회)와 ‘의미 있는 수’(촛불 집회)로 다뤄졌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양쪽 다 물러서지 않으려 해요. 물리적 충돌은 아니지만, 심리적 충돌 상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태극기 집회의 ‘군대여, 일어나라!’ 구호까지 여과 없이 내보내요. 그 비극은 엄청나잖아요. 광주의 참극이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는데, 그런 구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 심각하지요.

― 그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만큼,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라 보시는 건가요?
이런 상황에서 탄핵이 인용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바로 혼돈 속에서 대선 정국이 되겠지요. 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탄핵이 기각되는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톨레랑스(tolérance·관용의 정신)가 점점 고갈되어가는 사회에서 갈등과 혼란은 불가피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태극기 집회의 ‘군대여, 일어나라!’ 구호까지 여과 없이 내보내요. 그 비극은 엄청나잖아요. 광주의 참극이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는데, 그런 구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 심각하지요." ⓒ안종길

― 그 혼란은 고스란히 서민들을 타격할 텐데요.
오늘(2.8) 벌써 ‘4월 위기설’이 돌고 있고요. 경기(景氣)가 떨어질 거고요. 서민들은 그럼 홍수에 쓸려가는 개미들 신세가 됩니다. 정치인들이 제대로 반응할까요? 정부가 AI(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에 대응하는 걸 보세요. 상황이 심각한데 비상회의가 열리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짓누르는 위험 요소들이 겹쳐 있지요. 가계부채 1,300조 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체제, 사드 배치로 인한 대내·외 갈등….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12월에 겪었던 탄핵 정국은 어쩌면 가벼운 ‘홍역’의 시간에 불과하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는 ‘염병’을 앓게 되는 사회의 도래를 경험하지 않을까?

― 어쩌다 이런 갈등 상황에 치달은 걸까요?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현실이 사람들의 인식을 갈라놓는 것 같아요. 6.25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런 갈등이 없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남북 갈등, 이념 갈등의 역사는 계속되는구나, 싶어요. 이슈 하나만 터지면 양쪽으로 팍팍 갈라지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가 1940년대 말에 죽창 들고 일어나 이념을 이유로 싸웠던 그 시대와 다를 게 없어요. 봉합이 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이 충돌이 어떤 방식으로 번지고 표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심각하게 들여다보아야 해요. 해방 전후사 공간이 된 느낌까지 받는 무거운 상황입니다.

― 해방 전후사 공간이요?
지금 떠도는 말을 보세요. ‘고영태 신변이 위험하다’, ‘미행을 당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신변이 위험하다’ 등등…. 1930년대 독립투사나 겪을 법한 상황이잖아요? 한편에서는 ‘군대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요. 지금 우리 사회는 유신 시대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해방 공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 거죠. 누군가 “저 사람 죽여” 명령하면, 김구가 암살되듯이….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런 타격을 입었어요. 그래서 더 서글프고 고통스럽네요.

   
▲ "지금 우리 사회가 1940년대 말에 죽창 들고 일어나 이념을 이유로 싸웠던 그 시대와 다를 게 없어요. 봉합이 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이 충돌이 어떤 방식으로 번지고 표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심각하게 들여다보아야 해요. 해방 전후사 공간이 된 느낌까지 받는 무거운 상황입니다." (사진: 박사모 웹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죽창 태극기')

― <뉴스쇼>의 경우 댓글(청취자 의견)이 600~2,000개씩 달립니다. 어떤 ‘민심’이 확인되나요?
‘태평성대’일 때는 댓글 대다수가 좋은 내용이에요. 그런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나 빼고는 다 적’이 됩니다. 평소에 칭찬해주던 사람들도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반론 질문을 하면, 저희를 비판해요.

― 교회 다니는 분 중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는 것 같고요.
우리 사회의 큰 비극입니다. “대통령 잘 뽑아야 한다”고 설교하면, 예배 중에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해요. 우리 역사에서 교회 이데올로기가 통치자에게 무조건 승복하는 것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요. 교회가 비대해져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교회가 비대해지면, 그 몸집을 유지하고 더 키우기 위해 불법 건축도 하고 비리도 발생하는데 그것을 적당히 비호해줄 세력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렇지 않은 세력에게는 반감을 느끼고요.
앞서 말씀 드렸지만, 사실 우리가 남과 북으로 갈려 있는 데서 오는 문제가 엄청납니다. 그 압박이 은연중 우리의 사고를 통제합니다. 분단만큼 우리 인식을 완전히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게 없을 겁니다. 우리 민족의 불행이지요. 이념 지향은 다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존중과 관용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분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방송에서도 가급적 깐족대거나 조롱하는 식의 진행은 지양하고 있어요. 그렇게 가면 더 재밌어질 거고, 사람들이 더 열광해줄 거라는 거 알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 방송에서는 80대 노인으로 변장해 일상을 체험한 20대 청년 배우를 인터뷰했는데요. 공감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위험요소를 줄여갈 수 있을까요?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땅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 상태인데요. 물 몇 바가지 부어서 갈라진 땅이 아물지 않지요. 역부족을 느껴요. 요즘 같은 때는 정치 이슈로만 내달리면 최고로 반향이 좋을 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것에 대한, 이를테면 ‘노인 체험’ 같은 것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나 거듭 묻는 거지요. 핵심 이슈에서 밀려난 듯한 ‘사소한’ 졸업식 풍경(소리)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전하기도 하고요. 한 번 더 생각해볼 지점들을 다뤄요. 다른 시사프로들은 이런 것 안 할 겁니다. 힘들어요. 음향에도 공이 꽤 들어갑니다. 3분 분량의 소리를 방송하기 위해 한 사람이 종일 달라붙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에도 우리는 소리를 통한 공감을 시도하는 거죠.

― 청취자들이 ‘정의로움’에 공감하게 하는 것 역시 큰 과제일 것 같습니다.
참 어려워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나만 옳고 다 그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꾸준히 돌 맞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면을 보여주려고 하지요. 커튼 뒤의 세상을 살짝살짝 보여주면서 따라오게 하거나, 질문을 던지게 하면서요. 그래도 혼탁한 사안을 다룰 때는 공감보다는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야 해요.

― 2002년 대선을 시작으로 네 번째 대선을 맞는 시사 라디오 PD로서 이번 대선 관련, 주목하는 인물이나 이슈가 있나요? 2012년 대선 때는 최초로 ‘안철수’를 넣고 설문조사를 돌려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기도 하셨잖아요. 그 여파가 대단했는데요. 
먼저 시사프로 PD로 왜 대선을 네 번 치르기가 어려운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만큼 PD의 일은 한시적입니다. 보통은 현장을 떠나 부장이나 국장을 합니다. (‘대PD’는 승진을 ‘안’ 하고 현업을 하는 국장급 PD에 대한 예우로서의 회사 내 정식 호칭이다. 손근필PD는 CBS 창사 이래 최초의 ‘대PD’이다. - 편집자) 회사만 허락해준다면 끝까지 현장에 있고 싶어요. 아무튼, 제가 이렇게 현장에 오래 있었지만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판이 몇 번씩 뒤집히니까 사실 대선 관련해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습니다. 지금 탄핵 인용도 불확실한 상황이니까요.
다만 정치공학적으로는 광주를 주목하고 있어요. 광주에서 과연 안희정을 선택할지, 아니면 문재인을 선택할지를요. 이것은 단순히 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지형이 엄청나게 변할 수 있다고 봐요. 이번에 광주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까지도 결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다들 문재인이 될 거로 생각하지만, 한 달 뒤는 또 몰라요. 변수가 너무 많아요.

― 뉴스와 정보는 범람하고 있는데, 어떻게 선별해서 접하느냐도 중요한 시대 같습니다. 포털이 골라주는 뉴스만으로 시사를 접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아주 현실적으로 봤을 때, 포털에 노출되는 뉴스만이라도 읽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라도 시사를 접하면 지금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요즘은 카톡을 통해 전해지는 ‘가짜 뉴스’만 보잖아요. 일간 신문의 사설 제목만이라도 보면 좋겠어요. 신문을 안 보거나, 한쪽 시선만 접하니까 점점 어리석어지고 시야도 좁아지는 것 같아요. 보수적인 신문이 옳을 때도 있어요. 최근에 노조 간부 화장실에서 현금다발이 나왔다는데, 진보 매체는 이런 것 잘 못 다뤄요. 보수 매체는 비판할 거예요. 상당히 심각한 문제니까 당연히 비판해야죠. 양쪽을 다 봐야 그 안에서 지혜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시선들이 있구나’ 관용도 생기고요.

   
▲ 〈김현정의 뉴스쇼〉 제작진 및 코너

― 그런 의미에서 시사 팟캐스트가 많아지는 현실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한동안 긍정적으로 봤는데, 지금은 또 잘 모르겠습니다. 팟캐스트가 분명 장점이 있지만, 경계할 지점이 있어요. 종편 방송이 서로 경쟁하면서 방송의 질이 떨어졌잖아요. 팟캐스트도 순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검증이 덜 된 ‘아니면 말고’식 뉴스가 유통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장기적으로는 시사프로에 관한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어요. 순위 경쟁에 유리한 주제만 고르다 보면, 결국 염증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경쟁 속에서 자정되기는 쉽지가 않을 거라고 봐요. 우리도 그 경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요. 순위를 올리고자 발버둥 친 적은 단 1초도 없어요. 그 위험성을 아니까요.

― 기독교인 중에는 시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뭐가 바뀌겠어?’ 하는 냉소도 있고요.
여러 선생님을 만나온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세요. 교생 선생님과의 한 달이 인생을 바꾸기도 해요. 좋은 교사, 좋은 교육이 사람을 바꾸는 것처럼 좋은 정책이 생기면 세상은 바뀔 수 있어요. ‘송파 세 모녀’ 같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구의역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견인할 수도 있어요.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키고 변화를 일으키겠느냐 의심하겠지만, 10만 명이 댓글을 달면 정책이 바뀔 수 있습니다.

― 1989년부터니까 28년을 ‘라디오쟁이’로 살아온 것인데요. 라디오만의 장점이 무엇인가요?
라디오만큼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매체가 또 있을까 싶어요. 라디오만큼 청취자들과 호흡할 수 있는 매체가 있을까요?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그 순간에 바로 말해주잖아요. 나하고 실시간 소통하고 공감해주는 친구? 그게 라디오입니다. 라디오는 카운슬러라는 생각을 해요. 라디오 같은 작은 매체를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감하고 사역을 나눌 수 있는 방식은 얼마든지 있어요. 텔레비전을 통해 짧게 나가는 현장이 라디오로는 길게 나갈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세월호 청문회 같은 경우도 작은 마이크를 통해 그 목소리가 오랜 시간 세상으로 울려 퍼졌고요.
전쟁이 일어나도 방송이 나가야 하는 게 라디오입니다. 전쟁 순간에도 저는 출근해야죠. 사람들이 그때 가장 혼란스러워할 테니까요. ‘표준FM’이라는 것은 사실 전시 같은 비상상황 때문에 있는 겁니다. 혼란 가운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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