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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그릇’ 때문에 쓴 글
[338호 시사 잰걸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하여
[338호] 2019년 01월 02일 (수) 10:34:06 박제민 goscon@goscon.co.kr
   
 

우리나라 국회는 두 개다. 상원·하원 같은 양원제라서가 아니다. 국회가 열리는 기간에 따라 정기(국)회와 임시(국)회로 나뉘기 때문이다. 정기회는 매년 9월 1일 시작해서 100일 동안 열도록 되어 있다. 임시회는 2월 1일, 4월 1일, 6월 1일, 8월 16일, 또는 필요할 때,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열고 최대 30일까지(8월에는 16일부터 30일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는 정기회 기간에 정부의 일처리를 살피는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새해의 정부 예산안을 검토하고 처리하며, 법안을 처리하는 등 상당히 밥값을 한다. 이 시기에 밤새 불 켜진 국회를 심심찮게 본다. 그럼에도 정기회 때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이 수두룩해서 임시회를 열어서 못 다한 일들을 하는 것이다.

정기회의 자세한 일정은 국회의원 20명 이상으로 이뤄진 교섭단체 대표들이 합의해서 짠다. 올해도 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이 이러쿵저러쿵 싸우고 웃고 나서 일정을 발표했다. 주요한 결과로 새해 예산안은 11월 30일에 처리하겠다고 했고, 마지막 본회의는 12월 7일에 열겠다고 했다.

그따위 국회 일정까지 알아서 뭐할 거냐고 성을 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회는 ‘서랍 안에 처박아 놓은 DSLR 카메라’와 같다. 기능을 잘 알아두면 요긴하게 쓸 수 있지만, 모르면 그냥 돈지랄이다. 그러니까 국회 일정뿐 아니라 국회가 뭘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기억하고 잊지 말자.

이쯤하고 올해 정기회 일정 중에 두 가지만 기억하고 넘어가자. 11월 30일 예산안 처리, 12월 7일 마지막 본회의 개최. 아, 그리고 필요할 때 임시회를 열 수 있다는 것도.

‘밥그릇 싸움’이란다
올해도 새해 예산안은 약속한 날짜인 11월 30일에 처리되지 않았다. 이젠 뭐 놀랍지도 않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괜찮다. 이럴 줄 알고 12월 7일에 마지막 본회의를 하겠다고 잡아놓은 것 아닌가. 
그런데 올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변수가 생겼다. 그동안 사안에 따라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협력했던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당들이,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을 연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선거 때 드러난 민심 그대로 국회 의석을 나누는 제도다. (본지 328호 “벗들아, 문제는 ‘비례’야!” 참고) 실제 득표율보다 의석수를 많이 가져가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떨떠름해 하지만, 반대로 실제 득표율에 비해서 의석수를 적게 가져가는 작은 정당 또는 국회에 못 들어온 정당들은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들은 정부와 여당에게 꼭 필요한 예산안 통과와 선거법 개정을 연계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이런 요구를 쉽게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것은 정부와 여당이었다. 특히 여당을 대표해 예산안을 통과시킬 책임이 있는 홍영표 원내대표는 똥줄이 탔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둔 12월 6일, SNS에 다음과 같이 깜찍한 글을 올렸다. 야당들의 선거법 개정 요구를,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내일, 12월 7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하려면, 여야가 오늘 오전 12시까지 수정안에 대해 합의하여야 합니다. (…) 또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예산안은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이고 선거법은 국회의원의 밥그릇 챙기는 것이며, 상호 연계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입니다. (…) 선거법은 정개특위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있으니 예산안 처리에 적극 협조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정말 이렇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국회를 파행으로 운영하고 있는 야당에 대해서 유감스러움을 표합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결국 새해 예산안은 전에 없던 결과를 낳았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당들을 제외한 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당의 합의로 통과시킨 것이다. 머리수의 많음을 내세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 대표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 합의를 이루는 국회의 본령은, 두 거대 정당을 합친 의석수 앞에서 면구해졌다. 그럼 이제 국회의 밥그릇이나 지키려고 했던 야당들의 욕심은 수포로 돌아가고, 두 거대 정당의 책임정치로 인해 국민 밥그릇을 지켜낸 걸까? 지금부터 국민 밥그릇을 지키겠다던 분들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해보자.

국민 밥그릇 지킨다던 분들이 하신 일들
어느 날 밤 나는 흩날리는 폐지를 줍기 위해 8차선 도로로 뛰어드는 노인을 보고 울었다. 그 노인에게 매달 10만 원 더 주려고 짰던 예산 4,102억 원이 사라졌다. 애 안 낳아서 나라 망한다고 울분을 토하고 출산주도성장을 하겠다며 유난을 떨더니, 산모에게 지급하려고 했던 출산장려금도 없애버렸다. 사상 최악의 실업률이라면서 정부의 안일한 대책을 개탄하더니, 청년일자리 예산 1,240억 원과 구직급여 예산 2,165억 원을 빼버렸다. 농업소득 보전직불금 예산 3,242억 원도 없어졌다. 밥 한 공기에 300원은 쳐달라는 것이 농민들의 요구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립유치원 비리를 없애기 위해 필요했던, 소위 ‘박용진 3법’의 처리가 무산된 것은 덤이었다.

줄어든 곳이 있으면 늘어난 곳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국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끝에 국회의 쌈짓돈인 특수활동비를 없애기로 했었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고 노회찬 의원의 생전 고백과 문제제기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교섭단체 지원금을 64% 올려버렸다. 결과적으로 없어진 특수활동비보다 더 두둑히 챙긴 것이다.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1조 3천억 원 늘렸다. 그런데 이 돈들이 이해찬(더불어민주당/대표), 김성태(자유한국당/원내대표), 윤호중(더불어민주당/사무총장), 안상수(자유한국당/국회예산결산위원장), 장제원(자유한국당/국회예산결산위원) 등 국회와 정당에서 힘 좀 쓰는 것 같은 의원들 지역구에 골고루 뿌려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이거 이거 이렇게 되면 누가 누구 밥그릇을 챙긴 것인가.

내 밥그릇을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 글을 쓰는 지금 진짜 밥그릇을 마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다. 그들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새해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비판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특히 손학규 대표는 나이도 많은 사람이 출구 전략도 없이 단식한다고 말릴까 봐 동료들이나 가족에게도 알리지도 않고 발표했다고 한다. 그저 30분 정도 기도한 뒤에 혼자서 결정했다고. 그러고 보니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간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간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던 그의 기독운동 이력이 새삼스럽다. 근래에 손학규 씨를 응원하는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포털사이트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야당들을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욕한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더욱 공고해진다. 기득권이라 욕하면서 실상 기득권을 지켜주는, 조롱과 비난의 역설인 것이다.  

이웃 시민들에게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노회찬 전 의원이 염원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한 마음이 되어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선거제도는 고치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꼭 하고 싶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 (문재인 대통령)

“국민의 지지가 국회 의석에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야말로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시작이다. 그 토대 위에서 공정한 사회도 가능하다.” (고 노회찬 전 의원)

밥그릇 싸움 자체를 경멸하지는 말자. 이 세상 누군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 않겠는가. 나도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이 나라의 선거가 앞으로 영원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국회의원의 세비나 특권은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국회의원 숫자는 과감하게 두 배 더 늘리는 것도 열렬히 찬동한다.

폐지 줍는 노인, 자기 의지로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 ‘서른 즈음에’를 음미할 자유를 놓치고 있는 청춘, 쌀농사를 짓는 농부, 쫓겨난 철거민, 공장에서 2인 1조로 일하는 노동자, 어쩌다보니 ‘시사잰걸음’에 종종 나오는 어떤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거나 최소한 국회의원들이 아주 신경 쓰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귀한 지면을 또 빌렸다.

 2018년 12월 15일, 원내 5당 원내내표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여 새해 1월 임시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나와 여러분의 밥그릇이 걸린, 큰 싸움이 시작됐다.

야훼께서 착한 사람은 굶기지 않으시지만 나쁜 사람의 밥그릇은 깨버리신다(잠언 10:3, 공동번역) 

아멘.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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