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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민 우롱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339호 시사 잰걸음] 변한 게 아무것도 없네!
[33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1:31:33 박제민 goscon@goscon.co.kr

이런 글은 대개 예를 들면서 시작하더라. 나라고 별수 있나? 시민운동가 A씨는 어머니의 생계를 돌보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는 A씨에게 그간 받던 생활비에서 앞으로는 5만 원 적게 달라고 했다. 기초연금이 5만 원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A씨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A씨는 아니라고, 지금처럼 드리겠다고, 더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지만, 효자였기 때문에 결국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어머니가 매우 민망해하며 A씨에게 다시 원래대로 생활비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초연금이 5만 원 올랐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서 받는 생계급여가 5만 원 깎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는 어머니께 알겠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했다. A씨와 어머니의 대화는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기초연금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7월, 이전에 있던 기초노령연금제도를 확대·개편하면서 만들었다. 만 65세 이상 시민 중에서 소득하위 70%에게 매달 최대 20만 원씩 드리자는 제도였다. ‘소득하위 70%’란 만 65세 이상 시민들 중에서 소득이 적은 순으로 70% 안에 드는 분들을 말한다. 법은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 ‘최대 20만 원’이란 말은 모두가 20만 원씩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형편에 따라 받는 기초연금액이 조금씩 다르며 최대한 받아도 20만 원이 끝이란 말이다.

기초연금법은 그 목적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여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제공함으로써 노인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고 복지를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박근혜 정부도 더러는 잘한 일이 있는 것이다. 와, 잘했다!

여차여차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 9월부터는 기초연금 금액을 매월 최대 25만 원으로 올렸다. 와, 잘됐다! 그런데 금쪽같은 기초연금을 받았다가 고스란히 다시 내놓아야 하는 분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가난 때문에 가장 많이 힘든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이다. 와, 미치고 팔짝 뛰겠다! 왜 이따위 일이 벌어질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만 65세 이상 시민은 약 750만 명이다. 그중에 70%인 약 500만 명이 매달 최대 25만 원을 기초연금으로 받는다. 그중에 좀 더 돌봄이 필요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분들은 약 45만 명이다. 이들은 기초연금법에 따라 기초연금도 받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생계급여도 받는다.(그림1 참조)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보충성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 있다. 보충성의 원리란 국가가 정해놓은 최저생계비에서 개인의 소득을 뺀 나머지 부분만, 말 그대로 ‘보충’해주겠다는 것이다. 2018년에 국가가 정해놓은 최저생계비는 1인 기준으로 약 50만 원이다. 어떤 시민의 매달 소득이 20만 원이라면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생계급여로 3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똘똘한 공무원들께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에게 줄 생계급여를 계산할 때 기초연금액을 소득에 포함하기로 하면서 이 사달이 나는 것이다. 기초연금이 5만 원으로 오르면, 소득도 5만 원 늘었다고 계산해서, 생계급여 5만 원을 줄이는 것이다.(그림2 참조)
이 기가 막힌 논리와 설정 덕분에, 가난한 만 65세 이상 시민의 삶은 국가가 정한 기준, 50만 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똘똘한 공무원들께 말하고 싶다. 오늘날 50만 원으로 한 인간이 존엄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한번 살아보시라!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약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약 12.5%를 가뿐히 앞지른다. 늘 그렇듯 OECD 회원국 가운데 1등이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중 자살을 생각해본 사람이 10.9%이며, 그들 중에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12.5%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는 대답이 약 40%로 가장 많았다. 인구 10만 명당 65-74세 노인 자살률도 81.8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 압도적으로 1등이다. 기준을 75세 이상으로 올리면 160명을 넘는다. 한평생 살아온 인생이 가난 때문에 의도치 않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노인 빈곤율 문제를 더욱 심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8년 12월 28일에 발행한 〈이슈와 논점〉(제1531호)에 의하면, 2019년 4월부터 저소득층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5만 원씩 더 주면 빈곤율 완화 효과가 오히려 3.5%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지금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계속해서 보충성의 원리를 따를 경우, 기초연금이 오를수록 빈곤율 완화 효과는 떨어진다고 지적한 것이다. 가난한 시민들을 위해 기초연금액을 올릴수록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법에 몇 글자만 보태면
기초연금을 올릴수록 가난한 시민들이 더 고통받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 국회가 법조문 문구를 조금만 바꾸면 된다. 참여연대 출신의 박원석 전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시절,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 내용을 현행법에 적용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생계급여를 주기 위해 소득인정액을 산정, 즉 셈을 할 때 기초연금액을 빼면 된다.(표1)

법안을 발의했던 당시 기준으로 연간 7,383억 원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큰돈이지만 필요한 데는 써야 한다. 법에 몇 글자만 더 적으면 할 수 있다. (참 쉽죠?) 하지만 이 쉬운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재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2019년 예산안을 짜면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에게 교통비, 문화생활비 명목으로 ‘부가급여’를 월 10만 원 지급하는 안건을 국회 본회의에 올렸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난한 시민의 삶은 충분치는 않아도, 약간의 숨통을 트일 수 있었다. (참 다행이죠?) 하지만 이 다행스러운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실로 오랜만에 뜻을 합쳐 다른 야당들을 배제한 채 통과시킨 새해 예산에는 가난한 시민들에게 단돈 10만 원이라도 더 주자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자신의 기념비적 저서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쓰면서 내 의식의 한 켠에서 반복적으로 연상된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에 보았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었다. 뮤지컬 초반부에서 민중들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네’라고 노래한다. 원작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 이후에 민중의 실망, 민중혁명 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민운동가 A씨의 어머니는 매달 25일에 기초연금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달 20일에 기초연금액만큼 빠진 생계급여를 받는다. 더하기, 빼기, 그 결과는 똑같다.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네! 이 노래는 뮤지컬에 나오는 프랑스 민중들만의 노래가 아니다. A씨의 어머니, 그리고 가난이 힘든 45만 명 이웃들의 부르짖음이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 시민단체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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